내 눈으로 보는 내가 전공하는 분야를 적고싶다.

수많은 지식들과 방법을 적는 것만이 아닌, 내가 겪었고 또 하고 있는 것들, 관련된 것들을 다 포함하는 그런 게시판으로 만들고 싶다.

여기에는 내 기억도 들어갈테고, 때로는 사진도 들어갈테고, 내 느낌들도 들어갈꺼구..

나만의 천문학에 관련된 페이지를 만들고 싶다.

by BSang 2012. 3. 1. 15:22

그래, 자네가 요즘 슬럼프라고? 나태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기가 어렵다고?

그런 날들이 하루이틀 계속되면서 이제는 스스로가 미워질만큼, 그런 독한 슬럼프에 빠져있다고?

왜, 나는 슬럼프 없을 것 같아? 이런 편지를 다 했네, 내 얘길 듣고 싶다고.


우선 하나 말해 두지, 나는 슬럼프란 말을 쓰지 않아, 대신 그냥 ‘게으름’이란 말을 쓰지.

슬럼프, 라고 표현하면 왠지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서… 지금부턴 그냥 게으름 또는 나태라고 할께.

나는 늘 그랬어. 한번도 관료제가 견고한 조직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지.

하다 못해 군대도 학교(육군제3사관학교)였다니까? 그렇게 거의 25년을 학생으로 살다가,

어느 날 다시 교수로 위치로 바꾼 것이 다라니까? 복 받은 삶이지만, 어려운 점도 있어.

나를 내치는 상사가 없는 대신,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 내 삶이었거든. 그래서 늘 힘들었어,

자기를 꾸준이 관리해야 된다는 사실이. 평생을 두고 나는 ‘자기관리’라는 화두와 싸워왔어.


사람이 기계는 아니잖아… 감정적인 동요가 있거나, 육체적인 피로가 있거나,

아니면 그냥 어쩌다 보면 좀 게을러지고 싶고, 또 그게 오래 가는 게 인지상정이잖아…

교수라는 직업이 밖에서 점검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슬럼프, 아니 나태에 훨씬 쉽게 그리고 깊게 빠져.

내가 자주 그렇다니깐? 자네들에게 표현을 안해서 그렇지.


난 나태란 관성의 문제라고 생각해. 자전거는 올라타서 첫페달 밟을 때까지가 제일 힘들지.

컴퓨터 켜기도, 자동차 시동걸기도, 사는 것도 마찬가지야.

정지상태를 깨는 첫 힘을 쏟는 모멘텀을 줄 의지가 관성이 치여버리는 현상...

난 그것이 자네가 말하는 ‘슬럼프’의 합당한 정의라고 생각해.

근데, 문제는 말야, 나태한 자신이 싫어진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 게으른 일상에 익숙해져서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그걸 즐기고 있단 말이지.

실은 자네도 슬럼프를, 아니 오랜만의 연속된 나태를, 지금 즐기고 있는 거라면 이 글을 여기까지만 읽어.

딱 여기까지만 읽을 사람을 위해 덕담까지 한 마디 해줄게. “슬럼프란 더 생산적인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기간이다.”

됐지? 잘 가.


하지만, 위에 쓴 덕담은 거짓말이야. 너무 오래 나태하면 안돼. 자아가 부패하거든,

그러면 네 아름다운 육신과 영혼이 슬퍼지거든, 그러면 너무 아깝거든.

그러니까, ‘정말’ 슬럼프, 아니 나태에서 벗어나겠다고 스스로 각오해. 그리고 이 다음을 읽어.


보통 ‘슬럼프’ 상태에서는 정신이 확 드는 외부적 자극이 자신을 다시 바로 잡아주기를 기다리게 되거든?

어떤 강력한 사건의 발생이나, 친구/선배의 따끔한 한 마디, 혹은 폭음 후 새벽 숙취 속에서 느끼는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라도…

그런 걸 느낄 때까지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자학을 유보하거든? 땍! 정신 차려 이 친구야, 그런 자극은 없어, 아니

면 늘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이란 말야. 그 자극을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생활의 실천으로 옮기는 스스로의 노력이 없으면 그런 자극이 백번 있어도 아무 소용 없단 말야.

정말 나태에서 벗어날 참이면 코끝에 스치는 바람에도 삶의 의욕을 찾고, 그러지 않을 참이면 옆에 벼락이 떨어져도

늘 같은 상태라니까?


내가 자네만할 때는 말이지, 가을이면 특히 11월이면, 감상적이 되고 우울해지고 많이 그랬거든?

"자 11월이다, 감상적일 때다" 하고 자기암시를 주기도 하고… 그래 놓고는 그 감정을 해소한다고 술도 마시고, 음악

을 듣고…

그러면 더 감상적이 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은근히 즐겼어.

딱지가 막 앉은 생채기를 톡톡 건드리면 따끔따끔 아프지만 재밌잖아? 내 젊은 날의 버거움이란 그런 딱지 같은 거였

나봐.


나도 철이 들었나보지? 차츰 해결법을 찾았어.

감정은 육체의 버릇이라는 걸 깨닫게 된거지. 일조량의 부족, 운동량의 부족, 술/담배의 과다…

즐기지 않는 감정적인 문제에 근원이 있다면 그런 거야. 난 정말 감정에서 자유롭고 싶으면 한 4마일 정도를 달려.

오히려 술도 되도록 적게 마시지, 몸이 아니라 마음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해. 꽤 효과 있어.

더 근원적인 건 '목표'의 문제야. 나태는 목표가 흐려질 때 자주 찾아오거든.

선생님 같은 나이에 무슨 새로운 목표가 있겠니? 내 목표란 '좋은 선생' '좋은 학자' 되는 건데,

그 '좋은' 이라는게 무척 애매하거든. 목표는 원대할수록 좋지만, 너무 멀면 동인이 되기 힘들어.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엔 더 작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지. 대개 일주일이나 한달짜리 목표들…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어? '정말로' 원한다면 해결은 생각보다 쉬워. '오늘' 해결하면 되.

늘 '오늘'이 중요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뭐 이런 차원이 아니야.

그냥 오늘 자전거의 첫페달을 밟고 그걸로 만족하면 되. 그런 오늘들이 무섭게 빠른 속도로 모이거든,

나태가 관성인 것처럼 분주함도 관성이 되거든.


사실은 선생님도 먼 나라에 혼자 떨어져서 요즘 감정적으로 무척 힘들어.

그래서 물리적인 생활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해. 육체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했잖아?

늦게 자지 않고, 일찍 일어나고, 술 마시지 않고, 햇빛 아래서 많이 움직이고 걷고 뛰고,

꼭 1시간은 색스폰 연습하고, 몇 글자라도 읽고, 3페이지 이상 글쓰고…

나는 잘 알거든, 이런 육체적인 것들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나태 속으로 빠지게 되는걸. 여러 번 경험했거든.


힘 내. 얘기가 길어졌지? 내가 늘 그래. 대신 긴 설교를 요약해 줄게. (선생님답지?)

일. 나태를 즐기지 마. 은근히 즐기고 있다면 대신 힘들다고 말하지 마.

이. 몸을 움직여.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할 일을 해. 술 먹지 말고, 일찍 자.

삼.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해. 지금 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아직도 나태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야. 그럴거면 더 이

상 칭얼대지 마.

사. (마지막이야 잘 들어?) 아무리 독한 슬픔과 슬럼프 속에서라도,

여전히 너는 너야. 조금 구겨졌다고 만원이 천원 되겠어? 자학하지 마,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그거 알아? 모든 것은 흘러. 지나고 나면 이번 일도 무덤덤해 질거야. 하지만 말야, 그래도 이번 자네의 슬럼프는 좀

짧아지길 바래.


잘 자.

(아니, 아직 자지 마. 오늘 할 일이 있었잖아?)

2005. 2.

서울대 김난도 교수님이 제자에게 보내는 메일의 내용 이라고 한다.

이 글에서, 목표가 흐려져서 그런게 아니냐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닫는다.

어찌보면 대학원을 들어오면서 생각했던 목표의 종착점에 와 있는 것인데,

어느새 종착점이 새로운 시작점이 된 시점이 되어버렸다.

목표가 흐려져서, 보이지 않아서 나태한 것일지도..

아니..실상은 게으름을 즐겨서 그런게 아닐까...

좀 더 부지런해져보자..

by BSang 2012. 3. 1. 15:01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에 실린 풍자만화..-_-;;

이거보고 뒤집어졌다 ㅎㅎ

 



뉴스에 나오는 내용을 보니까

신발을 던진 그 기자는 이라크의 영웅이 되었던데..

이라크사람들이 장대에 신발을 꽃아놓고 시위를 하는 모습도 나왔고,

부시에게 던진 신발을 1000만달러에 사려고 하는 사람도 나왔다고 한다.

그 기자의 조카인가가 나와서 우리 삼촌을 풀어달라 고 얘기하는 모습도 나왔구..

그나저나 부시대통령...잘 피하던데..ㅎ 

by BSang 2012. 3. 1. 15:01

한동안 드라마류는 거의 안 보다가,

갑자기 보게 된 베토벤바이러스..

처음엔 컴터 바이러스 이름 중에 그런게 있나 했는데,

그런 제목을 가진 음악이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 보니까 나처럼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없는것 같고,

예전에 유행하던 펌프에서 나온 음악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거 같음..-_-;;

한편 정도 보고나서 완전히 빠져서, 지난회들을 다 모아서 한번에 시청..

처음엔 노다메칸타빌레를 베낀 드라마이겠거니 생각하고,

어느정도나 거기서 벗어나려나 하고 생각한 게 사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음악드라마가 제대로 만들어질 역량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구.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어색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치만 회가 갈수록 흥미진진해지고, 재미있어져서 나온 것까지 전부한번에 봤다.

특히 드라마의 중심에 있는 강마에, 김명민의 연기...후덜덜할 정도..

김명민 이란 배우는 하얀거탑 에서 본게 처음이었는데,

거기서도 너무 역할을 잘해서, 상대배우가 너무 드러나 보이지 않을정도였으니..

게다가 이런 드라마가 나올 정도의 역량이 된다는게 놀랍다.

지겹도록 나오는 신데렐라식의 스토리, 혹은 출생의 비밀, 혹은 사랑얘기들..

일단 이 드라마는 그런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

물론 약간의 러브라인이 회가 가면서 나오긴 했지만, 뭐 그래도 그정도쯤이면..

연장 같은거 하지말고, 원래 스토리대로 끝을 볼수 있었음 좋겠다. 

by BSang 2012. 3. 1. 15:00

주말동안 오랫만에 집에 박혀서,

받아놓은 만화책을 감상..

제목이 "개 고양이 점프" 라고 되어있어서 그동안 흥미도 가지지 않다가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자 고 열어보면서,

단숨에 다 읽었다.,

이 만화의 장르는,

"우주와 육상을 테마로 한 장대한 러브 코미디" 라고 나온다. -_-;

시작되는 부분을 어떤 남자앞에 이쁜 여자가 나타나는 일반 연애물처럼 시작되는데,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나오는 학원물이기도 하고,

육상을 소재로 한 스포츠물이기도 하고,

우주가 나오는 SF물...이건 아니군..

어쨌든

"그것은 작은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서,

엄청난 점프를 하면,

나는 저 멀리

저 멀리까지 날아가서

스페이스 셔틀처럼

지구를 돌 수 있어!"

이 만화를 보면서 느껴졌던 감정은 복잡미묘했다.
 

1. 내가 지금의 전공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저 만화책의 말처럼 지금도 저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천체역학이든, 우주동역학이든 암튼 그런걸 배워서 그런지

저 그림을 보고서 저 그림처럼 생각할수가 없었다.

바로 떠오르는 건

초속 7.9 킬로로 달려서 점프를 하게 된다면,

지구를 빙글빙글 돌수 있다 라는 답이 딱 나왔으니까..

그것보다 빨리 달려서 점프를 하면 지구의 중력에 의해서 타원운동을 하게 될테고,

초속 14킬로를 넘어서면 지구와는 영영 안녕 하게 된다는 사실까지..

만화책의 느낌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너무 메마른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ㅜㅜ





2. 만화속의 천문부..

만화속에서 친한(친한지는 모르겠지만)선배가 천문부 가입을 권유한다.

천문부에 가본 주인공은 선배와 다른 사람들이 벌린 술판을 본다 -_-;;

옆에서는 열심히 관측하는 사람도 있구..

사실 내가 입학했을 때만 하더라도 선배들이나 동기들 모두 술을 엄청 마셔댔던걸로 기억한다.

난 술을 거의 입에 대지도 못했지만 그런 모습들을 많이 봐 왔으니까..

실제 산에서 관측하는 사람들도 술을 많이 먹는다는 얘기도 들었구.

지금은 세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술을 권하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별로 없는듯..

나 역시 입학초기에 야간수업을 들어가야 했을 때

학교 잔디밭에서 권하는 술을 먹고서, 얼굴이 뻘개진 상태로 수업에 들어가서 수업을 들은 기억이 있다 -_-;;




3. 여러가지 하늘에 대한 콘티들..

허블우주망원경,

안드로메다 은하,

우리은하,

그리고 하와이의 마우나 키 산에 있는 거대망원경들..

이러한 것들이 만화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다른 만화와는 다른 특별한 느낌을 주게 만든다.

나한테는 그러한 만화책에서와 같은 느낌이 없는거 같아서, 이쪽일을 하면서도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어쩌면 아마추어와, 프로가 되려는 사람의 차이일지도..

지나친 연애물의 형태를 따르지 않고,

약간은 아즈망가 대왕 같은 분위기도 풍기고,

그리고 무엇보다 팬티 가 많이 나오는 만화 -_-;;

보면서 스포츠물이겠구나 싶어서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멀리뛰기 하는 장면이 언제 나오나 했는데,

결국 육상부로 돌아가는 내용은 없다.

만화가 풍기는 분위기가 넘 좋다.




by BSang 2012. 3. 1. 14:59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경 "숫타니파타"중에서)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가지 모양으로

우리의 마음을 산산이 흐트려 놓은다.

욕망의 대상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도달하여

도를 얻는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어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속 다섯가지

덮게를 벗기고

온갖 번뇌를 제거하며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며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흑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의 뜻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의미는 부처님이 열반하시기 전 최후의 유훈인 “제행이 무상하니,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불교는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으름 없이 열심이 묵묵히 부단히 홀로 정진하라는 의미입니다.

*"<숫타니파타>는 가장 오래된 불교경전입니다. 아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하나의 경전으로 체계화되기 그 이전의 거의 원형에 가까운 부처님의 육성입니다. 그러므로 이 <숫타니파타>에는 난해한 불교전문용어나 철학적인 딱딱한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그 대신 때로는 지루하기조차 할 정도로 순박한 글귀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반복 글귀를 통해서 우리는 저 맑고 청정한 새벽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추위(인도의 겨울밤은 상상외로 춥다고 합니다)를 가릴 옷 한 벌과 밥그릇(바리때) 한 개만을 든 채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사라져간 이, 그가 바로 저 영원한 구도자의 상징인 부처님입니다. 그는 무우수 나무 밑에서 태어나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다음 그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하여 45년간을 바람처럼 살다가 그의 나이 80세에 사라수 나무 밑에서 조용히 열반(임종)에 들었습니다. 그런 그의 가르침이, 아니,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사라진 이의 말이 뒷사람들에 의해서 하나의 묶음으로 모아졌으니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말씀 모음집인 <숫타니파타>인 것입니다."
불교는 '부처님'에 대한 인간의 시각이 얼마나 좁은 것이었는가 느끼게 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유용한 말들이 가득합니다. 굳이 이 글에서의 부처님 말씀처럼 집착을 버리고 무소유와 무욕을 실천함으로서 '니르바나(해탈)'에 이른다는 것이 어려울지는 몰라도 돈과 명예, 욕심과 허영으로 가득 찬 세상을 좀더 현명하고 즐겁게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빌렸고,
무엇을 되돌려줬는지
나는 어떻게 살았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한번쯤 되돌아보게 합니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퍼온글..
문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라는 말이 생각나서 찾아봤는데,
저런 구절들이 있는지는 몰랐다.
자주 읽어봐야지..
by BSang 2012. 3. 1. 14:55

100만년 동안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100만번이나 죽고서도 100만번이나 다시 살아났던 것입니다. 
멋진 호랑이 같은 얼룩고양이였습니다. 
1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고양이를 사랑하고, 
1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한때, 그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였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임금님이 싫었습니다. 
임금님은 그 고양이를 멋진 상자에 넣어 
전쟁에 데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고양이는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어 버렸습니다. 
임금님은 한창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고양이를 안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왕궁의 뜰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때는 뱃사람의 고양이가 된 때도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바다가 싫었습니다.
뱃사람은 세계 곳곳의 바다나 항구에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날, 고양이는 배에서 떨어져 버렸습니다. 
뱃사람은 물에 젖은 걸레처럼 축 늘어져 버린 
고양이를 안고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리고, 먼 항구 마을의 공원 나무 밑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때는 서커스의 요술쟁이의 고양이가 된 때도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서커스 따위는 싫었습니다.
요술쟁이는 매일 고양이를 상자 안에 넣고서는 톱으로 두동강을 내었습니다.
그리고는 살아남은 고양이를 상자에서 꺼내 보여 주면서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요술쟁이가 실수로 고양이를 진짜로 두동강이를 내버렸습니다.
요술쟁이는 두동강이가 되어 버린 고양이를
두 손으로 쳐들고는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죽는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어떤때 그 고양이는 도둑의 고양이가 된 때도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도둑이 몹시 싫었습니다.
도둑은 개가 있는 집만 찾아서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어느날, 개가 고양이를 물어 뜯어 죽여 버렸습니다.
도둑은 훔친 다이아몬드와 함께 고양이를 안고서
큰소리로 울면서 어둠 속의 마을을 걸어다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작은 뜰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때 고양이는 혼자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는 할머니가 몹시 싫었습니다. 
할머니는 매일 고양이를 안고 작은 창문 너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고양이는 나이가 들어 죽어버렸습니다.
늙어서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할머니는
늙어서 죽은 고양이를 안고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뜰의 나무 밑에 고양이를 묻었습니다. 


어떤때 고양이는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는 여자 아이가 매우 싫었습니다.
여자 아이는 고양이를 업어 주기도 하고,꼭 껴안고 자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고양이는 여자 아이의 등에 업혀 묶은 띠가 목에 감겨 죽었습니다.
머리가 흔들거리는 고양이를 안고서, 여자 아이는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떤때, 그 고양이는 어느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도둑 고양이였던 것입니다.
고양이는 자신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비로소 자기 자신의 고양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암고양이이건 그 고양이의 짝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커다란 물고기를 선물로 바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살이 통통하게 찐 쥐를 갖다 바치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멋진 호랑이 무늬의 털을 핥아 주는 고양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런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난, 100만 번이나 죽었었다구. 이제 와서 뭐 새삼스럽게 그래.나 원 참!" 
고양이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좋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딱 한 마리, 그 고양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눈부시게 희고도 아름다운 털을 가진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흰 털을 가지 고양이 옆으로 가서,
"난, 100만 번이나 죽었었단 말이야!" 라고 말했습니다.
흰털 고양이는,"그럴 수도 있지."하며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
"넌 아직 한 번도 죽어본 적이 없지?"라고 물었습니다.
흰털 고양이는 그저 "그렇단다." 라고만 말할 뿐이었습니다.
고양이는 좀 화가 났습니다.
고양이는 자기 자신이 무척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는 흰 털을 가진 고양이 앞에서
빙그르르 세 번이나 돌면서 말했습니다.
"난, 서커스의 요술쟁이의 고양이일 때도 있었어."
흰 털을 가진 고양이는 "그래" 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100만 번이나...." 하고 말을 잇다가
"네 옆에 있어도 돼?" 라고 흰털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흰털 고양이는 "그렇게 하렴." 하고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흰털 고양이는 귀여운 아기 고양이를 많이 낳았습니다.
고양이는 흰 털 고양이 옆에서만 지냈습니다.
고양이는 더 이상 "난, 100만 번이나...." 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흰 털 고양이와 많은 아기 고양이를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이윽고 아기 고양이는 점점 자라나 뿔뿔이 어딘가로 가 버렸습니다. 
"저 놈들도 멋진 도둑 고양이가 되었구먼." "정말 그렇군요." 
흰털 고양이가 그렁그렁 부드럽게 목소리를 내며 대답했습니다. 
흰털 고양이는 차츰 늙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층 더 부드럽게 "그렁그렁" 목을 울리곤 했습니다. 
고양이는 흰털 고양이와 함께 언제까지나 살아있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흰 털 고양이는 그 고양이의 옆에서 
조용히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지나고, 또 밤이 오고, 아침이 오고.. 
고양이는 100만번이나 울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지나고 아침이 지난 어느 날 한낮에,
고양이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고양이는 흰 털 고양이 옆에서 조용히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카우보이 비밥에서 잠시 언급되었던 "백만번 산 고양이"관한 내용입니다

원본출처 : 사노요코 글 그림-백만번 산 고양이




오늘의 교훈
1> 솔로영생 커플단명
2> 백만년전 태고적에 고양이가 있었다


내가 자주 가는 곳에서 퍼온글.

카우보이 비밥에서 이런 얘기가 있었던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일본애니를 첨 보기 시작했을때의 애니였는데..

다만 줄리아가 이뻤다는 건 기억난다.. -_-;;

리플 달린걸 보니까 오늘의 교훈 1번이 사람들에게 감명을 많이 줬나부다. 글이 많이 달렸다..ㅎㅎ


by BSang 2012. 3. 1. 14:52














최근에 삘 받아서 본 일본드라마..

호타루는 일본말로 반딧불을 얘기하는데, 반딧불의 빛 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의 이름이 호타루 이기 때문에 호타루의 빛 이라고도 할수 있을듯..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하루카 아야세일줄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에서 나오던 풋풋한 여고생의 이미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드라마에선 캐리어우먼으로 나온다.

그리고 호타루와 같이 사는 부장...

그런스타일의 남자..정말 멋있는듯..

건어물녀, 거북이녀, 타이어녀, 아호미야(아호는 바보라는 뜻) 등으로 불리는 여주인공과,

그 여주인공과 같이 살게 되면서 여주인공을 변화시키는 남주인공..

침대에서 자는 장면에서조차도 화장을 하고 있다는 그런 드라마들보다는

실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가 훨씬 낫다.

이것도 순정만화로 나와있는듯..

나중에 기회되면 읽어봐야지..

by BSang 2012. 3. 1. 14:42



올해들어서 노다메 칸타빌레 이후로 두번째로 보는 일본 드라마.

모 클럽에 올라왔었는데, 댓글이 가장 많이 달렸길래 재밌겠다 싶어서 받았다가,

일요일부터 보게 됐다.

일본의 경제성장기인 60년대를 그리고 있는 드라마.

너무나 눈에 익은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먼저 본 선배 말로는 정말 쟁쟁한 배우진이라고 하던데..)

사토라레에 나오던 여군의사를 맡았던 스즈키 교카가 은행장의 정부로 나올 줄이야.. ㅡㅡ;;

키무라 타쿠야는 long vacation 이후로 두번째로 보는 거여서 그때 봤던 앳된 얼굴과 매치가 잘 안됐고,

로스트 메모리즈에 나오던 나카무라 토오루가 사위로,

춤추는 대수사선에서 수사를 지휘하던 야마기바 토시로는 다른 은행의 은행장으로..

그 외에도 눈에 익은 배우들이 많이 보인다.

상당히 진지하면서도 더럽게 꼬인,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버린 가족들..

선배는 잼있어서 단숨에 다 봤다던데, 나 역시 지금 7편을 보고 있는중..

키무라 타쿠야가 상당히 바른 생활 맨으로 나온다. 긍정적인 생활방식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일을 추진하는 역할..

정략결혼, 근친상간, 은행을 위해 아들을 짓밟는 아버지 등등..

이 작품 역시 하얀거탑을 쓴 작가가 쓴 거라고 한다.

이 작품은 국내에 리바이벌이 안 되려나..

by BSang 2012. 3. 1. 14:40




파인만은..

물리학자인 리차드 파인만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수학과 물리라고 하는 것은

신이 하고 있는 체스를 옆에서 지켜 보며

거기에 어떤 룰이 있는지

어떤 아름다운 법칙이 있는지

알아내려 하는 것이다라고

처음부터

그런 법칙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엉터리이고

의미없는 일들의 끊임없는 반복일 뿐이라고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수학자들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재미없는 우주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로

싫증이 나버리고 말겁니다

하지만 오까모토는

체스의 수수께끼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유리씨같은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도

그 룰 위에 놓여져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런 어떠한 룰이 없었다면

두사람이 어디선가 만나더라도

그대로 스쳐 지나가서

서로 상관할 일도

말을 주고받을 일도 없을 터인데

우주 한 귀퉁이인

이 연회장에서

우리들이 이렇게 모이게 된 것도

그리고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행복한 것도

오까모토가 단 한사람의 여성과 만나 준 덕택입니다

운명이라고 하는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를 오늘

그가 풀어 낸 듯한 느낌이 듭니다

선배한테 빌려준 시디를 받아서, 디비디로 구우려고 하드로 저장해 놓던 중,

이 내용을 찾으려고 재생했다가, 결국 끝까지 다 봐 버렸다. ㅜㅜ

드라마의 흡입력이 대단한것 같다. 처음 봤던게 2000년 경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요조숙녀라는 드라마로 리베이크했다고 들었는데, 사쿠라코의 역할을 김희선이,

오스케의 역할을 고수가 했다고 들었었다. 고수는 하필 그 많은 연구 중에서 천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나왔다던데..

생각만큼 흥행은 되지 않았던듯..

저 대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런 우주에서의 룰이, 사람에게도, 아니 나에게도 있을지..^^;;

처음 볼 때 너무 인상적으로 봤었는데, 그 느낌이 여전하다.

이러다가, 고쿠센이나 섬머스노우 까지 다 봐버리는건 아닌지..ㅜㅜ

다시보면서 느낀거지만..마츠시마 나나코..정말 이쁘다..ㅎㅎ

by BSang 2012. 3. 1. 1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