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에 있는 대원사를 들렀다가 찾아간 곳..

대원사 가는 길에 공원이 먼저 보였고, 돌아오면서 들른 곳..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독립신문을 발행한 사람이고, 독립문을 만든 사람이라는 것 정도만 머리속에 있어서

볼 만한 것이 있을까 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방문..

결과적으로는 보고 생각할 만한 것이 상당히 많았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기념공원 앞에 서 있던 독립문..

예전에 퀴즈문제에서 이 문을 만들때 들어간 돈이 얼마나 되느냐 라는 문제가 있었는데 들어간 돈이 3000원이라고 했던 걸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문을 없애고 지은 문이며, 원래 지어진 위치에서 지금은 옮겨져 있다는 것도..

 

앞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편에 있는 건물에 들어가니, 독립운동으로 훈장을 받은 사람들의 사진들이 걸려있고, 외국인으로서 훈장을 받은 5명의 사진도 걸려있었다. 그 중 가장 최근에 봤고, 익숙한 인물이 장개석과 그의 부인..

 

건물로 들어가서 구경 시작..

독립문을 모티브로 만든 입구..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입구

 

입구에 들어가서 보이던 글..

 

대한제국 왕실에서 준 의자와 탁자인듯..

 

미국의 병원에 걸려 있던 의사 서재필의 안내판..

 

해방 후 미 군정의 권유로 들어온 서재필

 

 

 

 

 

 

맨 아래의 모형은 서재필이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

 

영한사전을 만들기 위한 초안인듯..

 

 

유일한과의 인연

 

의사로서의 생활

기념관 구경 후 찾아간 서재필의 생가..

기념관에서 1.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

설명에 의하면 태어난 곳이 외가라고..

 

서재필 생가의 모습

 

 

 

서재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독립신문, 독립문, 교과서에 실린 위인 정도가 거의 전부였는데,

이 곳을 들리면서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전에 팟캐스트 방송을 들을 때, 서재필은 국내에 들어와서 우리말을 하지 않고 영어로만 대화를 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 사람은 친일파만큼은 아니겠지만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다 라는 인식이 박혀있었다.

실제로 남겨진 기록물이나 그가 적은 글들이 모두 영어로 적혀있었고, 심지어 한국사람들과 편지를 쓸 때도 영어로 써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몰랐던 것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인물 중의 하나였다는 것과(사실 기억하는건 김옥균 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서 본인은 일본으로 갔다가 일본의 냉대로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한국에서는 역적으로 몰려 그의 가족들과 부인, 아이까지 죽었었다고..

그리고 갑신정변을 일으킨 나이가 21세..

이 부분까지만 보고서도 그럴수 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다 잃은 슬픔과 분노가 하늘을 찔렀을터이고,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환멸을 느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게다가 미국에서 미국인과 결혼을 했으니 집에서도 한국말을 쓸 기회가 없었을테고..

 

그 외에도 

갑오경장 무렵에 사면을 받아 국내에 들어와서 독립신문 창간 등의 역할을 하고

그 당시의 집권자들의 눈에 나서 다시 국내를 떠났지만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고

해방 후에 미 군정의 요청에 따라 국내에 들어와서 여러 활동을 하고 다시 미국으로 귀국해서 눈을 감았다는 내용 등은 내가 잘 모르는 내용이기도 했다.

해방 전후에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특히나 그가 의사였다는 것은 기념관을 가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교과서에서 단편적으로 배웠던 내용을 입체적으로 알아가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됐다.

사실 따지고보면 미국인이었지만, 그의 노력이 인정되어서 훈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이 날 방문했을 때 그의 초상이 모셔진 사당 안에 대통령의 화환이 놓여있었다.

 

나중에 다시 방문해서 다시한번 살펴보고 싶은 곳..

by BSang 2019. 4. 19. 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