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올린 구마라 와 함께 보관되어 있던 롤링 페이퍼..

그때 당시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렀던 것 같은데, 지금은 롤링 페이퍼 라는 말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_-;;

하계, 동계 수련회 등을 갔을 때

1000 배를 하고,

자자포살을 통해서 자신이 행한 잘못들을 참회하고,

포행을 하고

촛불의식 등을 하고서

거의 마지막으로 적었던 것 같다.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자신의 이름을 적고서

옆으로 돌려가면서 그 사람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적었던 종이들..

정리하다보니, 학교에서 반 별로 적었던 것도 한 두개 정도 있었고,

이곳 유니텔 미리내 동호회에서 적었던 것도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가장 많이 받은건 역시나 학생회 시절때 받았던 것들..

적었던 글들을 보면서 누가 나한테 이런 말들을 적었을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대부분 좋은 말들이어서 기분좋았던 글들..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 때 당시에는 그냥 그렇게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는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이 되어가는 것 같다. 흐르는 시간에 더해서..

by BSang 2012. 3. 1. 16:23




중고교 때 받았고 또 만들었던 구마라..

구마라의 뜻은 "수행하는 청소년" 이라고 한다.

중, 고교때 불교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다달이 소식지가 나왔고, 한 해가 마무리되던 시점에(대부분 12월 25일)

총회를 하고, 다음 년도 회장, 부회장을 뽑고, 소식지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고2가 되었을때는 나 역시 활동을 했었구..

몇 년 전에 영관이가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준 적이 있다.

그 때 당시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 중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안에 들어있던 내용으로는 교리와 관련된 얘기, 설화,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들, 낙서, 그리고 10문 10답과 같은 개개인의 얘기들..

분명 그 때 당시에는 있었던 일들이고 했던 일들인데

지금에 와서는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졌고, 명맥도 남아있지 않지만

어쨌든 내게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그 때 알던 친구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친구들이기도 하구..

그 때 알고 지냈던 누나, 형들은 다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진다..

by BSang 2012. 3. 1. 16:23




요즘 매주마다 내리고, 올라타는곳..

내릴때는 못 느끼지만, 타고 올라가는 기차를 기다릴 때는 항상 이상야릇한 감정이 교차한다.

군시절, 상무대에서 후반기 교육을 마친 후,

자대배치를 받아서 가기위해

장성에서 조치원까지 이동해서, 조치원에서 경부선 기차를 타고 내려간 적이 있다.

군용 기차칸 안에서 바라보았던 신탄진역의 야경...

손만 뻗으면 닿을듯한 그 모습....왠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중간중간 역에 정차하면서, 한명씩, 한명씩 자신들이 가야할 부대로 내리는 사람들..

종착역인 부산역에서 도착했을 때, 기차역에 남아있던 사람은 나 혼자였던 기억..

그런 기억뿐만 아니라,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게 하는 곳..

by BSang 2012. 3. 1. 16:22


92년

01 더 늦기전에 (Themesong) - V.A

02 잃어버린 하늘 - 신승훈

03 나를 용서해 주오 - 서태지와 아이들

04 우리가 설 이 땅 - 푸른하늘

05 봄의 미소 - 이승환

06 1999 - 넥스트

07 철이를 위한 영가_공일오비 (015B)

08 숨쉬고 싶어 - V.A

09 어제의 기억으로 - 윤상




93년

01 내일은 늦으리 - 올스타 밴드

02 상실 - 서태지와 아이들

03 철이의 독백 - 공일오비(015B)

04 기침소리 - 봄여름가을겨울

05 어린 왕자 In Seoul - 신승훈

06 지금 미래가 시작되고 있다 - 이승환

07 자연책 그림속에 - 신성우

08 최후의 날에 - 크래쉬(Crash)

09 세상속에서... 그댄 - 듀스(Deux)

10 마지막 일기 - 이오스(E.O.S)

11 함께한 시간 - 잼(Zam)





94년

01 아름다운 세상으로 - 김현철

02 의식구조 - 김건모

03 잃어버린 계절의 순수함에 대하여 - 김현철

04 지금 미래가 시작되고 있다 Ⅱ - 이승환

05 미래가 아름다운 건 - 전일식

06 그땐 너무 - 미스터 투(Mr. 2)

07 새가 나는 곳 - 부활

08 어머니의 노래 Ⅱ - 김종서

09 다시 볼 수 없는... - 피노키오

10 내가 꿈꾸던 내일 - 노이즈(Noise)

11 용사의 외침 - 투투(Two Two)

12 상실 - 서태지와 아이들


 


95년

01 붉은 바다 ('95 내일은 늦으리 주제곡) - 넥스트(N.EX.T)

02 이제는 - 김건모

03 사랑할 때가 왔어요 - 솔리드(Solid)

04 나를 바라봐 - 신효범

05 산소 호흡기 - DJ DOC

06 Maximum Overdrive - 넥스트(N.EX.T)

07 흔들리는 중심 - 알이에프(R.ef)

08 2005년생 내 아들에게 - 윤종신

09 인해(人害) - 지니(Geenie)

10 너 (조국)을 위한 시 - 룰라(Roo'Ra)

11 내일이면 늦으리 - 강산에







최근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찾게 된 음원..

처음 음반이 나온 것이 92년이라는데, 벌써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때의 나는 고등학교를 갓 입학해서 다닐 때였는데..

당시에 첫번째 음반을 카세트 테이프로 샀던 기억이 난다.

두 개 정도가 내 방안에서 굴러다녔는데,

시디를 듣기 시작하면서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음반이 95년까지 나왔는지는 몰랐다.

난 초창기 두 장의 음반은 가지고 있었는데..

그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들이 하나의 음반을 만들기 위해서 모두 모였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었는데..

그때 그 가수들은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고,

EOS, REF, 투투, 노이즈, 공일오비, 서태지와 아이들 등

이제는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룹들도 있다.

당시에는 이제 막 환경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던 때 같은데,

지금은 환경 이라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어쨌든 오랫만에 음반들의 노래를 듣고 있다. 좋다 ^_^









by BSang 2012. 3. 1. 16:21




연구원에서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cdp로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너무 편하게 음악을 듣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음질을 중요시하면서 mp3나 화일형태로 음악을 듣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 전에 신해철의 기사를 봤는데, 자신의 노래를 핸드폰 음악으로 쓰고 싶은 생각은 없으며,

mp3 플레이어나 핸드폰으로는 고음과 저음영역대를 다 표현못한다 는 내용이 실렸다.

그래서 갑자기 원본시디를 듣고 싶어진건지도 모르겠다.

집에 CDP가 있는지 찾아보니...다행히 하나가 있었다.

IMP-550, 아이리버에서 꽤 오래전에 출시한 모델..

실질적으로 mp3cdp는 이 모델로 경쟁의 종지부를 찍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장 얇게 만들어졌고, 재생시간이 국내제품 중에서 가장 길었다.

껌전지가 두개나 들어가기도 했지만..

거기다가 라디오 수신 기능도 들어가 있었으니, 당시로선 최고의 제품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때 당시만 해도 플래시형 mp3의 용량이 8,16,32 메가 정도인 상황에서

700메가를 음악시디로 구워서 듣는다는건 엄청난 일이었으니까..

이거 전에 샀던 아이리버 모델이 두 개였는데

조개껍질처럼 생긴 IMP350 - 요건 설화한테 분양했고,

변기뚜껑이라고 불렸던 IMP400 - 요건 수연누나한테 분양됐음.

그 다음에 정착했던 것이 IMP550 인데, 실질적으로 이걸로 그리 많이 음악을 들을 일이 없었다.

그 후로 아이리버에서 하드형 mp3가 나왔고 그걸 더 많이 사용했었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크기인 10기가여서 노래를 잔뜩 넣어서 가지고 다녔다..

지금 이 제품은 내 차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음.

아이리버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오로지 원본 시디만 재생되는 플레이어들이 있었고,

그래서 다른 제품들을 썼었는데,

아이리버에서 제품들이 나오면서

펌웨어 업그레이드 라는 것이 처음으로 나왔고,

음악시디뿐만 아니라 mp3 cd도 읽히는 기능이 들어갔고,

노래제목과 가사를 한글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커다란 매력이었음..


요게 350 모델..일명 조개껍데기

요 녀석은 뚜껑이 얇았지만 생각보다 튼튼했었고,

리모컨 액정에 기스가 잘 나서 액정보호필름을 붙였던 기억이 난다.



요게 400..일명 변기뚜껑..

이거 말고 와인색깔도 있었는데 이것도 이노디자인에서 디자인했음.

그리고 전 모델과 많이 달라진 것이 리모컨모양..



 

어쨌든 오랫만에 꺼내어서 내용물들을 확인해보니

보조건전지통, 일명 보조밥통만 없다.

cdp 내부를 보니 껌전지는 앞쪽부분이 하얗게 뭔가가 끼어서 그걸 제거하고,

아답터를 꽃아서 충전을 시키고 재생시켜보니 쌩쌩하게 돌아간다 +ㅁ+

플레이어 안에 2004년에 미주가 준 mp3cd 가 들어있어서 그것 또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껌전지는 수명이 거의 다 된것 같아서 새로 주문..

애석하게도 아이리버 쇼핑몰에서는 더이상 이 제품들을 취급하지 않는다. 악세사리도 그렇구..

리모컨이나 아답터 등등 거의 다 가지고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껌전지를 새로 장만해서 요 근래 구입한 음반들을 들어봐야지..

 



 

by BSang 2012. 3. 1. 16:18

오늘 휴대폰을 새로 구입하다..


SCH-870

2000년에 군 제대하고서 처음 사용한 폰..

군대를 가기 전 98년초까지 삐삐를 사용했기에

제대후 나와서 쓰는 핸드폰은 낯설게 다가왔다.

투박하고, 배터리가 무겁긴 했지만 통화는 잘 됐던 폰..

마이벨 이라는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면 쓸 수 있다고 해서 서비스센터에 가서

업그레이드를 받고 벨소리를 받아 쓴 기억이 난다.

나중에 다른폰으로 바꾸게 되면서 정한이한테 갔는데, 그 후론 어떻게 됐는지 모름..


SCH-A2000

이 폰 역시 스님께 받은 폰..

내가 가진 폰 중에서 가장 작으면서 대기시간이 길었던 폰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듀얼폴더로 나온 초기 모델이었을듯..

이 폰을 쓸 때 가장 불편했던 것이,

문자를 받고 나서 답장을 쓸 때

상대방의 번호가 찍히지 않아서

문자쓰기전에 상대방 전화를 외워서 답장을 썼던 기억이 난다.

보상판매로, 지금은 내 손에 없음..



SCH-E300

최초로,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지 않고 산 폰..

대학원에 들어가는 기념으로 가서 골라서 쓰라고 해서,

전에 쓰던 폰처럼 전화만 되는 폰을 사려 했으나

딱히 맘에 드는 폰이 없어서 구입했었다.

그전까지는 보호케이스가 없었는데, 이 폰부터 보호필름을 사용했던걸로 기억한다.

기능도 많았고, 문자보낼 때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어서 편했던 폰이다.

폴더의 앞쪽이 돌아가기 때문에 폰을 빌려서 셀카를 찍는 후배들이 많았음 ㅎㅎ

폰은 튼튼했지만, 접히는 부분의 코팅이 벗겨져서 나중엔 보기가 흉해지는 단점이 있었음.

번호 누르는거나 문자 보낼 때 번호판 누르기가 내가 쓴 폰중에선 제일 괜찮았던것 같다.

그리고 멀티미디어 기능이 많았던 폰이기도 하구.

이 폰 역시 보상판매로 내 손에 없다.



SCH-V840

최초로 사용한 슬라이드폰

폴더형이 아닌 폰이면서, 얇은 폰은 처음이었다.

내 폰은 사진처럼 전체가 까만 폰..

두께가 얇아져서인지, 배터리 지속시간이 짧다는 것이 맘에 걸렸지만

매일매일 충전하기에 그리 불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버튼이 작고, 누르기엔 딱딱하고,

슬라이드라 그런지 버튼간의 간격이 작아서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기엔

그리 좋은 폰은 아닌듯..

전화기능 외의 기능들이 별로 없어서 내겐 쓰기 좋은 폰이었음.

카메라의 플래시를 손전등 기능으로 아주 유용하게 사용..



SCH-W360

오늘 구입한 폰..

핸펀을 사야돼서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구입하게 된 폰이다.

3G 모델이라서 USIM 이란 카드를 사서 끼워서 써야한다.

지금은 통신사에서 카드에 락을 걸어놨지만 조만간 풀린다고 한다.

풀리게 되면 다른 통신사의 폰에 내 카드를 꽃아서 사용할 수 있을듯..

터치 기능이 들어가고, 여러가지 못보던 기능들이 들어가 있는 폰..

잘 터지질 않는다는 얘길 들었는데 최소한 내가 생활하는 공간에선 그런 현상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해외에서 로밍이 되는지 안되는지 신경쓸 필요가 없어질거 같다.

처음 사용한 폰이 애니콜이라는 것도 있고,

핸드폰으로 문자 보낼 때 다른 회사의 문자보내는 방식은 다르니까

바꾸게 될 때도 계속 같은 회사의 핸드폰을 쓰고 있다.

잔고장도 없고, 튼튼하기도 하다.

최소한 내겐 그렇다.

핸드폰을 바꾸면서 애니콜 페이지에 핸드폰 기록을 등록해 놓는데,

내가 처음 사용했던 폰부터 정리가 되어있는 페이지가 있길래 보다가

몇자 끄적거려봄..







 

by BSang 2012. 3. 1. 16:16




Nikon FM2

내가 가지게 된 내 첫 카메라.

카메라를 사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1학년 입학시, 김광태 교수님의 수업에서, 별자리 사진을 찍어 내는 과제가 있었다.

그때당시 나와 친한 동기중 한명이 어릴적부터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하며 꿈을 키워온 녀석이었고,

컴퓨터, 사진 등등 뭐든 잘하는 아이였다. 마치 천문학이라는 분야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과제제출을 위해서 많은 동기들이 그 녀석에게 부탁을 했고, 나 역시 부탁을 했었다.

하지만 많은 학과 활동과 편집부 일 때문에 그걸 까먹었는지, 결국 제대로 제출하지 못했다.

아무튼 그 학기가 시작되면서 카메라가 필요하다고 스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어느날 날 데리고 백화점으로 가서 바로 구입한 것이 바로 이 녀석이다.

그때당시 백화점에서 80만원을 달라고 했으나, 아~주 카메라를 잘 아시는 분께서 같이 가 주신 관계로

표준렌즈, 카메라가방, 삼각대까지 해서 58만원에 샀었다.

이 녀석이 생기면서부터, 실제로 사진찍는것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사진에 관련된 책들을 읽고, 필터들을 구입하고, 많이 찍게 됐다.

대부분은 현상소에 맡겨서 사진을 뽑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과에 있는 암실에서 사진을 많이 뽑았었다.

암실의 그 약품냄새란... ㅡㅡ;;

어쨌든 수동카메라 중에서 상당히 괜찮고, 좋은 기종이다.

대부분의 FM2는 은색 바디를 가지고 있지만 이건 특이하게 블랙 바디이다.

이 녀석의 영향 때문에 카메라는 니콘을 선호하게 됐고, 똑딱이뿐만 아니라 DSLR 까지 모두 니콘이다.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카메라에 관한 지식들도 다 이 녀석때문에 생겨난 것이기도 하구.

순간순간을 간편히 찍기 위해 디카를 사용하면서 이 녀석을 사용할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결혼식이든 정말 필요할때는 아직도 이 녀석을 사용한다.

벌써 이 기종을 소유하게 된지 10년이 넘었다. 그 시간동안 많은 순간들을 이 카메라와 같이해왔다.

평생을 이 녀석과 함께 할듯..

by BSang 2012. 3. 1. 16:14

군대를 다녀오고나서부터 컴퓨터로 뭔가를 하는 것이 일상의 일이 되어버릴만큼, 요즘은 컴퓨터를 매일 만지고 살고 있다. 주로 쓰는 분야가 인터넷 서핑과 애니메이션, 영화감상이지만..ㅎㅎ

내가 컴퓨터라는 기기를 처음 구경해 본 건 1984년이다. 시골의 학교이고 교통 역시 불편한 곳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그 시기에 컴퓨터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컴퓨터인지도 몰랐었다. 다만 대우와 삼성 메이커를 단 기기들이 주욱 있었다는 기억뿐..






 요건 대우 8비트 컴퓨터..

저 위에 팩 같은것을 끼워서 게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내가 직접 해보진 못했음)

삼성 컴이 기억나는데, 카세트 테이프 같은걸 읽는 장치가 달려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거기에 테이프를 집어넣고 거의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게임을 하는걸 지켜봤었다.

예전에 나왔던 뉴스에서는 삼성에서 그 컴들을 찾는 행사를 했다고 하던데..

그 다음해에 학교에서 베이직 이라는 프로그램을 가르쳐줬지만 전혀 기억에 남는건 없다.

다만 생각나는건,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너는 컴퓨터냐?" 라고 입력했더니 "네" 라고 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

그 후로 컴퓨터라는 기기는 나와는 동떨어진 기기였다. 관심도 없을뿐더러 그런게 있다는걸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고교 2,3 학년즈음 되니까 주변에서 컴퓨터를 한다는 친구들이 얘길 하는걸 종종 듣게 됐다. 티비수신카드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얘기여서 그때 생각으로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던것 같다.

당연히 화제거리에 끼지도 못했구.

그 후로 컴퓨터라는 기기를 접하게 된 건 대학 1학년때였다. 교양수업으로 포트란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학교에 있는 컴이라는게 286컴이었다. 5.25인치 디스크를 사용해서 부팅해서 쓰는..

뒤쪽에 앉는 애들이 수업은 듣지 않고 한메타자를 열심히 치던 모습들이 기억난다.

그때 당시 컴터실에서 타자연습을 할 때 88학번 선배가 손을 올려놓는 법을 갈켜줬던 것도..^^

그나마 자주 접하는 계기가 됐던 건 dune2라는 게임을 알고부터였던것 같다. 아는 형이 486 컴을 구입했는데 핀볼과 dune2를 하려고 꽤나 들락거렸었다. ㅎㅎ

2학년이 되니까 학교에 윈도우 95가 깔리기 시작... 하지만 낯선 환경때문에 거의 다루질 못함..

이때까지만 해도 컴터라는 기기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단계였음..

본격적으로 컴이라는 기기를 접하고 알게 된 건 97년이다. 컴터를 사게 되면서 직접 접하게 됐기 때문에..

당시 꽤 많은 돈을 주고 샀었던 것 같다. 삼보컴 최신모델을 샀었으니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는 사양이 486DX나 펜티엄 66 정도였는데 구입한 컴의 경우 CPU 속도가 200MHz, 하드 2.1기가, 모니터 17인치, 윈도우 95, A2까지 찍을 수 있는 잉크젯 프린터까지... 거의 300만원 가까이 줬던것 같다.

다룰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주로 쓰는 사람은 나였다.

하다가 안되면 삼보컴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컴터 책을 사서 따라해 보기도 하고, 다들 자는 밤에 모뎀으로 PC통신에 접속해서 채팅하고.... 그러면서 어느정도 컴을 다룰 줄 알게 된 것 같다.

그 후로는 계속 컴을 접하면서 지냈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행정일을 해야 했기에 계속 접했으니까..

제대후 97년에 산 컴을 업그레이드하면서 하드웨어에 관한 지식들을 많이 습득할 수 있었다. 자취를 시작하게 되고 생활비라는걸 쓰게 되면서 필요한 부분부분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써야 했기에..

후배가 컴터 관련 판매을 해서 두 번 정도 후배를 통해서 업그레이드를 했고, 나중에는 컴터 매장 사장님과 알게 되어서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적고보니 꽤 많은 시간들을 컴과 함께 한 듯 싶다..^^

by BSang 2012. 3. 1. 16:13




위 사진은 개인 블로그에서 퍼온것..

슬램덩크에서 나왔던 실제의 마을이라고 한다.

사진을 보다 보니까 만화의 기억이 살아난다.

저 전철이 지나가는건, 능남과 승부를 펼칠때, 예선전에서 강백호가 늦게 일어나서 자전거 막 타다가 탔었던 장면,

해남에게 지고나서 머리 빡빡 민 다음 탔을때 그 전철에 아무도 타지 않았던 장면 등이,

두번째 바닷가 사진은, 맨 나중에 어깨부상으로 강백호가 입원했을 때 소연이의 편지를 읽던 곳,

네번째 체육관 사진은 능남의 체육관이 생각난다.

건널목이 보이는 사진은, 능남과 싸워 아깝게 졌을 때 북산의 모든 팀들이 건너던 그곳..

블로그에서 슬램덩크와 관련된 글을 읽어보니까

연재를 모두 끝낸 후에 6대 일간지에 작가가 그림을 그려서 냈는데, 광고비만 300억 가까이 썼다고 한다.

대단...+ㅁ+

각 캐릭터에 관한 묘사와, 농구에 관한 세밀한 묘사, 재미..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는 명작만화..

지금 현재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만화책 ^^

by BSang 2012. 3. 1. 16:12

어릴적 내가 살던 곳 근처에 있던 산.

이 산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어릴적 근처에 살았던 이유도 있지만, 그 산이 삼국유사에 실려있기 때문일꺼다.

국민학교를 들어갔을 때, 작은 학교였기에 도서실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 교실이 도서실 겸으로 같이 사용된 적이 몇번 있었다. 그 때 많은 책들을 읽었었다. 초등학교 이후 내가 읽었던 책들보다 더 많이..

그 시절 봤던 그림책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이란 제목으로 나와 있던 이야기에 이 산이 언급되어 있다.

이 산에는 두 가지 얘기가 전해진다.

옛날 중국의 어느 나라가 있었는데, 달이 밝은 밤이 되면 궁전의 연못에 어떤 산이 비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곤 했다. 왕은 그 산이 어떤 산인지 궁금하여 여러 곳에 신하들을 여러 곳으로 파견보냈다.

그 중 한 신하가 우리나라 남쪽까지 와서, 어느산을 올라보니 연못에 비치던 곳과 같은 곳이어서, 그곳에 신발 한짝을 벗어놓고 왔다. 그 후 달이 밝은 밤에 보니 그 신발이 보였다. 그 후 왕은 이 산의 이름을 백월산 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그 이후로는 연못에 비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또 한가지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에 관한 일화이다.

두 사람은 친한 친구였고, 출가하기로 결심하고 백월산에서 따로 움막을 짓고 수행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여인이 찾아와서 재워주길 청하였는데, 한 사람은 거절하고, 한 사람은 허락했다. 들어간 집에서 여인은 아이를 출산하였는데 나중에 보니 관세음보살이었다. 보살은 목욕한 물에 몸을 담그라고 권하였고, 몸을 담근 이는 부처가 되었다. 다음날 여인이 머무는 것을 거절한 사람이 허락한 사람을 놀려주러 찾아왔다가 이 광경을 보았고 그 역시 목욕물에 몸을 담그어 부처가 되었다. 두 사람은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고 서방정토로 날아갔다고 전한다.

대전에 오기 이전의 일들을 생각하다 생각나서 적어본 글..

by BSang 2012. 3. 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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