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A88 지옥의 외인부대(1989/ KBS)

에어리어88

80년대 우리나라에서 방영되던 만화는 대부분 변신소녀물(천사소녀새로미,요술공주밍키등)/명작만화(세계 명작동화 소공녀 등) 일색이었다.
우리나라 만화들은 아기공룡둘리나 이현세가 그린 까치등 생동감이 비교적 적은 만화들뿐이었다. 그러나...생동감 넘치는 화려한 전투신으로 나의 눈을 사로잡은 만화가 있었으니...바로 에어리어 88이었다. 외인부대의 전투신과 카자마신이 처한 상황 그리고 그의 애인 료오코와 만나지 못하고 엇갈리는 비극적 상황들이 이 만화를 더욱 기억에 남게 하는 것 같다.특히 마지막에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애인 료오코를 파리에 남겨두고 전장을 향해 날아가는 장면에선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었다.

추석쯔음에 엄마와 고추를 다듬다가 보게된 만화로 고추 다듬으랴 만화장면 놓치지 않고 보랴..집중해서 보기엔 어려운 상황에서 결말까지 어떻게 보긴 봤는데 외인부대의 생활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한 카자마 신이 평소에 그렇게 그리워하던 료오코와의 행복한 생활까지 포기하면서 아스람 왕국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쫌 의외였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무래도 료오코와 같이 행복하게 사는 후자쪽을 택하지 않았을까? ㅋㅋ

줄거리

중동의 아스란 왕국. 현재 이곳에서는 아스란국의 왕위쟁탈과 관련되어 현정부에 반역해, 정권을 잡으려는 반정부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정부군의 전투가 매일같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전투가 점점 치열해지는 상황을 앞두고 아스란 정부군측의 외인부대 중 하나인 에어리어88 에 굉장한 실력을 가진 조종사가 등장한다.
국적은 일본. 전직경력은 일본의 야마토 항공사의 수석 견습 파일럿. 일본의 수석견습파일럿 이었던 카자마 신은 항상 자신을 앞서만 가는것에 열등감과 질투심으로 점철된 죽마고우인 칸자키의 음모로 아스란 공화국의 최전선인 에어리어88 에 배치받게 된다.

중동의 살아있는 지옥의 최전선이라 불리는 에어리어 88 에서 나가기 위해서는 150만 달러의 위약금을 물던가, 아니면 3년 동안 배정된 작전을 완수하면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가혹한 조건이 붙는다. 3 년간의 지옥훈련을 마친 그에게 배당된 병과는 반정부군측에게 가장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엘리트 파일럿들로 구성된 전투 비행대대였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전투와 초연의 한가운데 속에서 신은 연인인 료오코가 기다리는 일본으로 가기 위하여 괴로워 하면서도 매일매일 원치 않는 살인을 하게 된다.

고향인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또 계속되는 살인에 종교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인간의 순수한 본성을 지니고 있던 그는 한시라도 빨리 에어리어 88을 벗어나기 위해 150만 달러의 목표량을 위해 한발한발 다가서게되고, 2년 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에 외인부대 최고의 격추왕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절묘한 테크닉으로 숱한 작전을 성공적 으로 수행해온 신에게 사령관 샤키는 불리해진 전세를 계기로 아슬란 국왕 망명 호위를 조건으로 내걸면서 신을 에어리어 88의 군무에서 해직한다.

정들었던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파리로 돌아가는 신...

그러나 자유의 몸으로 파리에 도착한 신은 연인인 료오코에게 전화를 걸지만, 둘은 연결이 되지 못한채 서로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만다. 평화로운 파리에서 일반 시민들과 자신과의 사이에서 웬지 알지못할 괴리감과, 이질감을 느끼던 신은 예전 동료였던 미키와 구엔이 우리들은 일반인들과는 다르다는...훌륭한 살인자 라는 말의 참뜻을 그제서야 인지하고 연인인 료오코를 파리에 남겨 놓은채, 에어리어88 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아슬란 공화국은 외국 군산복합체의 절대적 지원을 받고 있는 반정부군의 화력 앞에 궤멸 상태에 빠져 있고, 이미 정권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사령관인 샤키 바슈탈은 에어리어88의 전 파일럿들을 직위해제 시키게 된다.

샤키는 용병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며 자신은 아스란 왕국의 마지막 자존심으로서 최후까지 싸울겠다며 반전 금지 명령을 내리지만, 용병들 역시 샤키의 명령을 무시하고 최후의 전투를 함께 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아스란의 상공에서 타이거 샤크를 몰며 죽음의 전장으로 향하는 신의 짧은 미소를 보여주며 애니메이션은 마지막을 방청자들의 상상에 맡긴채 끝이 난다.

출처/http://myhome.hanafos.com/~alert88/areareaaas2.html

내가 초등학교였던가, 중학교때 상당히 감명깊게 봤던 애니.

당시 티비에서 방영했었고, 학교갔을때 다들 이 만화 얘기였던걸로 기억한다.

옛 기억을 더듬어 몇년전에 이 만화를 받아서 다시 봤다.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그림체, 요즘의 어설픈 컴퓨터그래픽을 능가하는 수작업으로 만든 애니, 상당히 자세한, 실제 전투기를 그대로 그린 모습, 인상적인 공중전투씬 등등.. 당시로서는 정말 혁명적인 애니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작년에 티비물로 에어리어 88이 다시 방영했었는데(아마 12,3화 정도까지 나왔던거 같음) 조금 보다가 예전과 다른 설정에 네편 정도 보다 말았다. 티비물은 생각보다 흥행을 하지는 못한듯..

프랑스 외인부대에 관한 검색을 하다가 같은 제목때문에 검색됐음..^^

by BSang 2012. 3. 1. 16:09



낮에 승미와 얘기하다가 전파에 관한 얘기를 잠시 하게 됐다.

얘길 하다보니까 2001년 전파학교에 참석했었다고 한다. 그때 나도 참석했었는데...하면서, 예전에 인터넷에 사진이 올라와 있던걸 기억해냈다.

벌써 4년 가까이 지난거라서 엄청 뒤지다가 간신히 찾아냈다.

사진속의 인물 중에서 승미는 안보임..-_-;;

그때에는 몰랐다가 천문연구원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도 보이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 때 난 이유 교수님의 소개로 여길 다녀왔었는데, 발표하는 내용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치만 다녀와서는 전파에 대한 관심이 생겼던것 같다. 한때는 전파를 전공할까도 생각했었구.

태양에서도 전파를 관측한다. 태양전파를 하는 사람은 정말 세계에서 손을 꼽을만큼의 사람들밖에 없다. 잘은 모르지만 그것도 재미있는 분야인듯..

저 때의 나는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낸 사진..^^

by BSang 2012. 3. 1. 16:07





별로 보지 않은 드라마 중 기억에 남는 드라마.

아마도 원작을 보면서 드라마를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원작의 내용이 아직도 머리속에 남아있다.

만화방과 인터넷을 돌아다녀봐도 원작을 구할수가 없다. 정말 보고싶은데..ㅜㅜ

당시에는 만화가 드라마화 된다고 떠들썩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나라 만화가 중 한 사람이다.

허영만. 현재는 식객을 그리는 거 같고 비트, 타짜, 들개이빨 등의 저자. 비트 역시 영화화되었었구.

아스팔트 사나이의 경우 만화속에서 미국의 자동차 회사가 남미 쪽으로 옮겨갈 거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선견지명이 놀랍다.

이병헌, 이영애, 정우성(이때 첨 나온걸로 기억한다), 최진실.. 인기를 끌 거라고 예상했지만 멋지게 빗나간 드라마.

만화책에서는 이강토 라는 인물이 국내의 군수납품용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서 국내 시장을 평정한 후 미국시장으로 진출하여 성공한다는 얘기이다. 태양열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승리하게 되고 결국 그 회사가 세계의 모든 자동차 판매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다른 회사들은 졌다고 인정한다. 그 후 보여주는 충격적인 모습..

드라마에서 기억나는건 정우성이 미국에서 싸우는 장면들과, 자동차로 러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장면들..

음악이 좋아서 OST를 샀었고, 아직도 있다. ^___^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보니까 이 책이 19세 이하 금지다. 그럴만한 내용은 없는데..-_-;;

아~~~ 정말 이 만화책 보구싶다..ㅜㅜ

by BSang 2012. 3. 1. 16:05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건 500생 이상의 업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늘 접하고 사는 대학원 사람들이나, 연구소에서 얼굴을 맞대고 같이 지내는 박사님들이나 사람들도 엄청난 인연에 의해서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인연에 의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고, 영향을 받을수도 있는것 같다.

내게 있어서 가장 인연이라면 큰스님과의 만남이다.

스님과의 만남은 1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관계로 삼촌댁에서 사촌동생들과 지내야 했던 나.

그러한 나를 길러주셨던 할머니.

그러나 할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항상 아프셨다는 기억밖에는..

그러던 할머니가 어느날 많이 아프셔서 서울 삼촌댁으로 가셨고, 어느날 돌아가셨다는 얘길 들었다.

할머니의 관이 집에서 나가던 날 친척들이 울면서 매달렸던 일들이 생각난다. 왜 그러는지 전혀 와닿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그 때 왜 내가 눈물을 흘렸는지는 알수 없다.

상 중에 삼촌이 방으로 부르셨고 절 드리라는 말씀을 하셨다.

방 안에는 스님이 되신 사촌형과, 또 다른 스님이 앉아계셨다.

그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그리고나서 어른들은 내게 물어봤다. 이곳에 남아있을 것이냐, 대전에 올라가서 스님과 같이 있겠냐고..

그때 당시엔 농사일을 도와주는 것이나 심부름을 하는 일들이 너무나 싫었고 가면 그런일들을 하지 않는다는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곳을 떠나고 싶어서 주저없이 간다고 말했었다.

할머니 상이 끝나고, 88올림픽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학교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방을 들고 부산삼촌 댁으로 갔었고, 그 후에 스님을 다시 뵐 수 있었다.

새마을 기차를 타고, 지금껏 왔다갔다하고있는 절로 갔고,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생활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신탄진에서 졸업하고, 고교는 대전시내에서 다니고, 대학 역시 대전에서 나왔고, 대학원 역시 대전에서 다시 다니려 하고 있다.

언제나 유행을 앞서가면서, 내게 이런저런 것들을 해주셨다. 이쁘다는 옷들을 사 주셔서 군대가기 전까지 옷을 내가 사본 적이 없고, 요즘은 이런 가수가 인기라면서 테이프나 시디를 사주시기도 하셨고, 멋 좀 부려야 된다고 날 미장원에 데려가서 파마까지 하게 만드셨던 스님..^^

스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날 늘 지켜보셔서 비뚤어지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젊으신줄 알았던 스님을 제대후 뵈었을 때 늙으신 모습을 보고, 맘이 아팠다.

시간이 갈수록 늙어가시는 스님.

지금껏 스님과 나 둘이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이번 생신때 방곡에 가서 뵈었을 때 방에 활짝 웃으시는 모습을 찍어놓은 사진을 봤다. 그걸 찍어오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찍어오질 못했다.

그래서 어서빨리 자리를 잡고, 스님을 모시고 이곳저곳을 다녀보고 싶고 뭔가를 해드리고 싶다. 어릴적 스님이 날 데리고 이곳저곳 돌아다니셨던 것처럼..

적다보니 오늘도 결국 만남이라는 것에 대해서 별로 적지 못한 것 같다. ^^;;

by BSang 2012. 3. 1. 16:04

친척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거의 신경을 쓰지않고 있었다.

명절날이나, 특별한 날에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 정도로 생각했었다. 아니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대전에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6학년때 대전에 올라온 이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친척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스님의 배려 때문이었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위해서라고 하셨으니까.

그러한 조치에 대해서 원망하진 않는다.

대학에 들어가고부터 어디로든지 갈 수 있고, 친척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생겼다.

그때 찾아뵈었던 친척들은 나를 잃어버린 사람을 만난 것처럼 대해주셨다. 사실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대전에서 떨어져 있었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등의 연락도 없었으니까.. 또한 알고싶다는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만났던 친척들은 내게 너무 부담스러운 존재로 다가왔다. 대전에 올라오기 이전엔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박혀 있어서 그런걸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친척이라는 관계가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것 같다. 나로서는 그렇게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되지 말았어야 하는 집안에서의 위치, 지금까지처럼 혼자있고픈 내 생각들, 기타 등등이 섞여있는 그런 상태..

이것도 내게 주어진 상황이니까 피하지 말고 부딪혀야 되는거 같은데, 넘 어렵다. 그냥 접하지 말고 살았던,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지내고싶다.

이것 역시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이겠지...

by BSang 2012. 3. 1. 16:04

싸이의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진.

그곳 기록상에는 이게 2001년 5월이라고 한다. 근데 왜 난 기억이 없는거지?

이때 가서 뭘 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익숙한 얼굴들은 있는거 같은데..

경수,규연이, 예빈,윤정,유진,대호,정은,설화(맞나?) 정도는 알아볼 수 있을듯. 뒤쪽에 있는 누나 이름은 생각이 안나는군..

이때 윤정이와 설화를 알고 있었나? 기억이 안난다..ㅡㅡ;;

어쨌든 장소는 김천의 직지사인건 확실하다. 여러번 갔었으니까. 직지사에 들어가기 전에 있던 비석에서 찍은 사진이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사진이라 이런적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도 난 있었군..ㅎㅎ

by BSang 2012. 3. 1. 16:03




경희대에서 천문학회가 있었다.

천문학회는 천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1년에 두 번 모여서 연구해온 것들을 발표하거나, 포스터를 붙여서 보여주는 행사이다. 4월과 10월에 날짜를 잡아서 하고 있다.

올해 학회는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서 처음으로 일반인으로 참석했다. 물론 내가 발표하는건 없었구.

지난 학기에는 발표 연습을 하루전에 잠깐 하다 잠들어서 다음날 간신히 마쳤었다..ㅜㅜ

경희대를 처음 가본 소감으로는, 학교가 너무 이뻤다. 건물들도 우아하구. 대신 등록금이 무지하게 비싼거 같다.

경희대 다니는 사람의 얘기론 입학금까지 500만원 가까이 된다고한다. 우리는 많아야 150만원 정도인데..

학교안을 돌아다니면서 '500만원이나 받는다는데 이정도는 되어야 되지 않겠어?' 라는 말을 학교 사람들 모두 입에 달고 다녔다..^^

같이 올라갔던 대학원생들과, 오랫만에 학회에 오셨던 교수님과 경희대 천문대 앞에서 한 컷..

by BSang 2012. 3. 1. 16:01

내 기억속의 할머니는 항상 숨이 차 하시는 분이다. 조금만 움직이셔도 숨차 하셨고 거의 진통제를 달고 다니시는 분이었었다. 할머니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사촌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냥 '야야' 할머니 라고 한다. 사촌동생들에게는 항상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시는 걸로 보였던것 같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건 다섯살 때였다. 부산에서 살다가 창원으로 왔던 날이었다. 하얀 옷을 입으시고 비녀를 꽃으신 할머니... 그 때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할머니와 항상 티격태격했었다. 티격태격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가 거의 맞았던것 같다. 그 첫 기억은 무언가 잘못했는데 부지깽이를 던져셔서 관자놀이 부근에 맞아서 피를 흘렸고 나중에 치료해주셨던 일이 기억난다. 다른 애들은 잘못하면 도망가는데, 넌 왜 항상 가만히 있어서 맞냐고, 뭐라 하셨었던것 같다.

할머니는 보수적인 분이셨다. 항상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집 뒤편에 냉수를 떠놓고 빌으셨고, 자주는 아니지만 절에도 다니셨다. 국민학교 때 내 꿈이 뭐냐고 물어보셔서 농부 라고 말했다가 왜 농부냐고, 화를 버럭버럭 내셨었고, 왼손잡이인 내가 숫가락이나 연필을 왼손으로 쓰는걸 이해하질 못하시고 그 습관을 바꿔버리셨다. 국민학교 들어갈 때쯤에 만들어진 내 이름보다는 항상 아명을 부르셨고, 항상 집안에 붙어있는 내가 못마땅하셔서, 머스마가 나가 놀아야지 집에만 있냐고 항상 야단치셨다.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무렵부터 거의 항상 진통제를 드셨다. 어디가 그리 아프셨는지 몰랐지만 그 진통제를 사러 옆마을로 심부름을 많이 다녔다. 한밤중에 새벽에 깨우셔서 무섭던 고개를 지나 자고있던 옆마을 약방 아저씨를 깨워서 약을 사 온적도 있었다.

6학년이 되고 2학기가 시작되지 않았던 얼마후, 할머니는 서울을 올라간다고 가셨고 그 후 살아서 뵐 수가 없었다. 다만 아파서, 치료를 받으러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을 들었는데....당연히 돌아오실 걸로 생각했다. 그 때의 나는 죽음이라던가 이별이라던가, 그런것을 인식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기에.

할머니 상을 치르면서, 수의를 입을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막상 관이 나오고, 친척분들이 울며 매달리는 것을 보고 울었던것 같다. 슬퍼서라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우니까 울었을것이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이것이 전부다. 나중에 내가 좀 더 자란 후에, 할머니가 나를 무척 걱정하셨다는 말을 들었고, 또 당신이 돌아가시면서 내게는 지금 이곳, 대전으로 와서 살게 되는 새로운 전환기가 찾아왔다.

할머니의 무덤가에 가 본지가 오래되었다. 올해 추석때는 찾아뵈어야지..

by BSang 2012. 3. 1. 15:58

나에게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가 생겼던 것이 1989년, 내가 중학교에 입학해서였던것 같다.

그래서 음반을 구입하게 된 것도 이 시기였던걸로 기억한다.

중학교 입학을 하고 중간고사를 봤을 때 시험을 잘 봐서 선물로 사주셨던걸로 기억한다. 한창

금성(지금은 LG지만) 에서 마이마이를 선전하고 있었고 오토리버스 기능이 있다고 광고를 했었

다. 내가 선물받았던 것은 인켈에서 나오는 작은 카세트였다. 다른 카세트처럼 안테나가 있는


모델은 아니었지만 음질은 괜찮아서 카세트 주머니에 넣고 항상 들고 다녔다.

카세트는 생겼는데 들을 테이프가 없어서 근처에 가까운 음반점을 무작정 가서 내 키보다 높은

진열대를 한참이나 올려다봤다. 한참이나 보다가 결국 사겠다고 고른 음반이 장국영 음반이었

다.

왜 그걸 샀는지는 기억나지는 않는다. 단지 이 때 즈음에 장국영이 우리나라에 와서 콘서트를

한 적이 있고 그걸 티비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무작정 샀었다.

그 테이프의 가격은 2300원이었구.

테이프 안에는 한창 유행했던 천녀유혼의 주제곡과 영웅본색의 주제곡이 들어있다. 그런 노래

들과 다른 발라드와 댄스곡들..

그 후로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다. 사랑일뿐야 라는 노래를 가요톱텐에서 듣고서 김민우 음반을

사고, 달빛가족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드라마 OST를 샀고, 너에게로 또다시, 숙녀에게, 희망사

항 같은 노래들이 들어있는 변진섭 음반을 사고, 극장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보

고 그 OST를 샀고 짝사랑하던 누나가 무한궤도를 좋아하길래 나도 무한궤도를 샀고, 신해철을

친구와 둘이서 너무 좋아해서 테입을 사서 늘어질때까지 듣고, 그러다 015B를 알게되고, 윤종신

독집을 사고, 조용필 음반을 사고, 이승환 앨범을 구하고... 그렇게 그렇게 모아왔었다. 지금은

리모콘으로 눌러서 간편하게 들을 수 있는 시디 때문에 한쪽 구석에 박혀 있다. 가끔씩 생각날

때 테입을 꺼내서 듣는다. 듣다보면 그 시절에 내가 뭘 했는지, 내가 생각하는 세상은 어땠는지

를 조금은 알 수 있을것 같아서..

시디를 모으게 되고, 군대를 다녀오게 되면서 많은 음반들을 잃어버렸다.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못받은 것들도 있고, 휴가중 나와서 듣다가 챙겨놓지 않아서 없어진 것들도 있고..

지금의 내게 있어선 함부로 버릴수도 없는 물건이다. 내게 남은 추억들과 기억들이 그 안에 모

두 들어있는것만 같다.

요새는 뉴에이지 음악이라던 조지 윈스턴의 음반을 꺼내서 듣고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와닿는다는 느낌이 든다.

나중에 나이들어서도 모아온 음반들을 바라보면서 듣기도 할려나...... 궁금해진다.

by BSang 2012. 3. 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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