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건 500생 이상의 업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늘 접하고 사는 대학원 사람들이나, 연구소에서 얼굴을 맞대고 같이 지내는 박사님들이나 사람들도 엄청난 인연에 의해서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인연에 의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고, 영향을 받을수도 있는것 같다.

내게 있어서 가장 인연이라면 큰스님과의 만남이다.

스님과의 만남은 1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관계로 삼촌댁에서 사촌동생들과 지내야 했던 나.

그러한 나를 길러주셨던 할머니.

그러나 할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항상 아프셨다는 기억밖에는..

그러던 할머니가 어느날 많이 아프셔서 서울 삼촌댁으로 가셨고, 어느날 돌아가셨다는 얘길 들었다.

할머니의 관이 집에서 나가던 날 친척들이 울면서 매달렸던 일들이 생각난다. 왜 그러는지 전혀 와닿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그 때 왜 내가 눈물을 흘렸는지는 알수 없다.

상 중에 삼촌이 방으로 부르셨고 절 드리라는 말씀을 하셨다.

방 안에는 스님이 되신 사촌형과, 또 다른 스님이 앉아계셨다.

그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그리고나서 어른들은 내게 물어봤다. 이곳에 남아있을 것이냐, 대전에 올라가서 스님과 같이 있겠냐고..

그때 당시엔 농사일을 도와주는 것이나 심부름을 하는 일들이 너무나 싫었고 가면 그런일들을 하지 않는다는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곳을 떠나고 싶어서 주저없이 간다고 말했었다.

할머니 상이 끝나고, 88올림픽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학교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방을 들고 부산삼촌 댁으로 갔었고, 그 후에 스님을 다시 뵐 수 있었다.

새마을 기차를 타고, 지금껏 왔다갔다하고있는 절로 갔고,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생활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신탄진에서 졸업하고, 고교는 대전시내에서 다니고, 대학 역시 대전에서 나왔고, 대학원 역시 대전에서 다시 다니려 하고 있다.

언제나 유행을 앞서가면서, 내게 이런저런 것들을 해주셨다. 이쁘다는 옷들을 사 주셔서 군대가기 전까지 옷을 내가 사본 적이 없고, 요즘은 이런 가수가 인기라면서 테이프나 시디를 사주시기도 하셨고, 멋 좀 부려야 된다고 날 미장원에 데려가서 파마까지 하게 만드셨던 스님..^^

스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날 늘 지켜보셔서 비뚤어지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젊으신줄 알았던 스님을 제대후 뵈었을 때 늙으신 모습을 보고, 맘이 아팠다.

시간이 갈수록 늙어가시는 스님.

지금껏 스님과 나 둘이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이번 생신때 방곡에 가서 뵈었을 때 방에 활짝 웃으시는 모습을 찍어놓은 사진을 봤다. 그걸 찍어오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찍어오질 못했다.

그래서 어서빨리 자리를 잡고, 스님을 모시고 이곳저곳을 다녀보고 싶고 뭔가를 해드리고 싶다. 어릴적 스님이 날 데리고 이곳저곳 돌아다니셨던 것처럼..

적다보니 오늘도 결국 만남이라는 것에 대해서 별로 적지 못한 것 같다. ^^;;

by BSang 2012. 3. 1. 1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