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그 위론 화해의 비가 내렸고 심지어는, 가끔은 꽃구름이 흘러다닐때도 있다

우리 두 사람은 강의 이편과 저편에 서서 가끔씩 손을 흔들기도 하지만

그저 바라볼 때가 사실은 대부분이다

 

그의 잔소리가 언제서부터인지 모르게 살갑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삶이 타들어가는 번뇌의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인지

혹은 그의 삶이 휴식과 완성의 시기를 원하기 때문인지

분명한 것은 천진한 웃음을 띈 그의 얼굴은 아들의 어릴 적 얼굴을 닮아가고

정작 아들의 거울에 비친 얼굴은 아버지와 닮아있다

 

난들 왜 그가 기뻐할 번듯한 세속의 성공과 안정을 주고 싶지 않았겠는가만은

아무래도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멀지 않은 미래에 안겨줄 그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태어날 그의 손주뿐인 듯 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내가 그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언어들을 순간의 울음소리로 알리리라

그렇게도 나는 나일뿐이고 싶어 했으나 이제는 또 다른 그가 되어 주고 싶다

나는 이 세상에 그가 남긴 흔적 혹은 남기고 갈 증거이다

나는 그의 육신을 나누어 받은 자

 

아이는 열리지 않는 그의 방문 앞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칭찬에 굶주리고 대화에 목이 마른 아이였다

기다림이 원망으로 바뀌자 아이는 망치를 들어 문에 못질을 해버리고 그곳을 떠났다

 

세상의 머나먼 끝에서 고독의 눈물이 흐르던 날

아이는 그가 스스로 방문을 열어준 적은 없었으나

문을 잠근 적 역시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오래 전 박아 넣은 날카로운 못들을 하나씩 빼내자 문짝에선 피가 흘렀고

문을 떠밀자 그 문은 힘없이 열렸으며 그 문의 저편엔 주름과 세월이 가득 차있었다

그리하여 수줍은 아버지와 겸연쩍은 아들은 난생 처음 뺨을 맞대게 되었다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는 먼지가 되리라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언젠가 이노래는 잊혀지리라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아들은 아비를 기억하고 또 아들의 아들이 그 아비를 기억하며

그들의 피는 이야기나 노래 보다는 조금 더 오래 흐르리라

그리하여 우리 세상에 잠시 있었던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하리라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

by BSang 2019. 10. 27. 00:40

최근에 모 음악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쿠라키 마이의 20주년 앨범이 나왔다는 뉴스를 접했다.

한참전에 듣다가 말았던 음반들이 생각났고, 다시 들어보는 중이다.

앨범을 더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현재 찾은건 사진에 있는 저 정도..

 

저 앨범들 중에 가장 먼저 소장하게 된 앨범이 Wish You The Best 앨범인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에 가는 후배에게 부탁해서 구매해달라고 했던 앨범..

우타다 히카루를 알게 되어 들으면서 알게 됐지만,

우타다 히카루보다는 쿠라키 마이의 음악이 더 맘에 들어서 더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참 듣다가 어느순간부터 듣지 않게 되었든데,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순간부터 나오는 노래들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어쨌든 나는 듣지 않고 모르고 있었지만, 이 가수는 꾸준하게 활동한다는 것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 분야에 대해서 이렇게 꾸준하게 활동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듯..

by BSang 2019. 10. 7. 00:44

최근에 카톡 프로필을 보면서 P 박사님의 프로필이 바뀐 모습을 봤다.

누군가와 함께 웃으며 같이 찍은 사진..

아마도 연구원에 있는 분들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나는 카톡 프로필을 통해서 그냥 짐작만 하는 정도..

 

박사님을 처음 알게 된 건 2003년인 것으로 기억된다.

연구원에 계시던 다른 박사님께서 와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연구원을 나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인사를 드리고, 뵙게 되었다. 

미국으로 관측을 가게 될 때 박사님의 가족들도 연구년 형태로 같이 나와서 숙소에서 같이 생활하기도 했었고,

대학원 박사과정에 박사님과 둘이서 관측하러 들어갔다가 모든 나쁜 일들을 같이 겪기도 했었다. 짐 분실에 전화불통, 나중에는 프리웨이에서 교통사고까지..

이 곳으로 오게 되었을 때 메일을 드렸었는데, 새 출발을 축하한다고 격려해 주시기도 하셨고..

지금은 일선에서는 물러나셨지만 여전히 그 그룹에서는 큰 어른이신 분..

 

박사님 개인적으로 안좋은 일들을 계속 겪으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안타까웠었다.

박사님의 카스에 적은 글 같은 곳에서 절절한 심경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작년이었던가..어느 방송을 보다가 방청객으로 앉아계신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아무튼..오랫동안 혼자 생활하시다가 (아마도) 좋은 분이 나타나신듯..

힘드셨던 기억을 극복하고 평안하셨으면..

by BSang 2019. 6. 2. 2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