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와서 포기.

작년 3월에 엄청나게 왔던 악몽이 생각나서(나 뿐만 아니라 박사님들도 그렇게 생각하신듯...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다들 그러셨음..-_-;;), 또 눈오는날 운전은 첨이라 얼른 짐을 싸고 나왔다. 거북이 걸음으로, 약간씩 미끄러지는걸 느끼면서 학교로 오다가 후배를 만나서 후배집에서 저녁 얻어먹음.

학교 올라와서 연구소에서 밀린 일을 하고 있는중..

교수님께 목요일 저녁까지 메일을 보내드리면 되겠다 싶었는데 목요일 오전에 교수님의 세미나가 잡혀있어서 가시기 전까지는 드려야할듯... 오늘도 군 관련 사람들과 회의하느라 아무것도 못했는데...후웅..ㅜㅜ

학교 와 보니까 등록금 고지서도 나왔는데 입이 벌어질 만큼 올랐다.

내는 돈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야할듯..ㅡㅡ;;

춥다..얼른 들어가야지..

by BSang 2012. 3. 10. 17:02

다시 한 주가 시작된다.

주말에는 아무 생각없이 놀았다. 늘 하던 것처럼..

노트북 상담해달라는 후배 상담해주고, 만화책 보면서..

이번주에는 야근이라는걸 해보려고 한다. 연구원에 들어와서 야근을 해본건 손에 꼽을 정도인데(한번은 발표자료 만드느라, 한번은 들어온지얼마 안돼서... 그치만 버스가 그냥 지나가버려서 그후론 해본적 별로 없음) 이렇게라도 해야 연구소 일을 따라갈 수 있을것 같다. 여러개를 헤매는 것 보다는 하나라도 빨리 확실히 마무리지어야할거 같으니까..

다시 한 주의 시작이다. 힘내구~

by BSang 2012. 3. 10. 17:01

Zemax라는 광학설계 프로그램 배우는 일

Visual C++ 배우는 일

소영이가 하다가 이어받은 우주환경 관련 웹페이지 버그 수정

어제 메일을 보내셔서 교수님이 시킨 일

논문준비

이 중에서 젤 문제는 논문과 Zemax가 아닐까 싶다. 나머지는 시간이 있으면 해결되는 거구. 물론 모든 일이 시간을 들여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겠지만.

이런 일들만을 한다면 별 문제 없겠으나 연구소라는 특성인지는 몰라도 하나에 집중할 여건이 되질 않는다.

저런 일 외에도 구매요구 같은 업무들도 신경써야하고, 도움을 바라는 일이 생기면 그것도 봐줘야하고... 요구하는건 많고 나오는건 별로 없고..뭐 그런상태인것 같다.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거 같기도 하구. ㅡㅡ;;

어쨌든 학교와는 다른 곳이니까 요구하는 것이나 생활하는게 다르다고 생각은 하지만..

앞으로 학교와 연구소의 일을 병행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지치면 안되는데....

by BSang 2012. 3. 10. 17:01

드뎌 기다리던 차가 어제 생겼다.

지난번에 갔을때 한번 알아보라고 하셔서 아반떼와 마티즈를 알아봤는데 별로 맘에 드시지 않으셨나부다.

나름대로 알아보시고 아벨라를 추천해주셔서 타기로 했다.

차 상태는 최상. 차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잘 아는 분이 봐주신거니까 그런건가부다 하고 있는중..

내게 있어선 두번째로 모는 차이고, 5년은 타고 다닐 차이다. 오토라는게 좀 걸리지만(오토를 운전해본 적이 없어서 차를 인수하러 가기전에 친구 차로 연습하고 갔음..후배들은 범퍼카라고 별거 아니라고들 하고.. -_-;;) 운전해 본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이젠 교수님도 내 차를 보면서 제대로 굴러가기나 하는거냐고 걱정 안하실듯..ㅎㅎ

어쨌든 이건 곧 폐차할 차도 아니니까 슬슬 꾸밀걸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한테 하나씩 사달라고 해야겠다. ^__^

by BSang 2012. 3. 10. 17:00

잠시 쉬어가야할듯.

나를 누르는 이 무게를 내가 충분히 감당해내고, 다시 도전할 수 있을때까지..

by BSang 2012. 3. 10. 16:59

바뀌는 저작권법에 대한 대비책
새로운 저작권법 시행으로 인해 우리 삶에서 바뀌는 것.

1. CD를 샀더라도 음악을 크게 틀어선 안됩니다. 만약 옆집에서 이것을 들을 경우 위법입니다.

2. 좋아하는 노래 한 소절을 메모해도 안됩니다. 누가 보면 위법입니다.

3. 중, 고등학교에서 노래와 춤으로 하는 장기자랑은 위법입니다.

4. 핸드폰을 벨소리가 나도록 하면 위법입니다.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습니다.

5. 노래방에서 가사를 보면 위법입니다.(노래방비내지 않은 사람이 볼 경우입니다)

6.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 위법입니다.(남이 들을 수 있습니다)

7. CD매장에서 CD를 미리 듣게 해 주는 것도 위법입니다.

8. 미용실에서 손님들 들을 수 있도록 음악을 틀어주면 위법입니다.

9. 각종 콩쿠르에서 현재 음반이 있는 음악을 연주하면 위법입니다.

10. 비록 제작자가 다운을 허락한 OST라도 CD로 발매되었을 경우 다운받으면 위법일 수 있습니다.

11.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집에 있는 악기로 연주해도 2차 가공이므로 위법입니다.

12. 길거리에서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옆사람이 들으면 위법입니다.

13. 다운 받은 벨소리를 적외선전송으로 친구에게 주면 위법입니다.

14. 파일의 확장명 변환(인코딩)은 2차가공의 소지가 있으므로 자제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15. 형제가 하나의CD를 번갈아가며 들으면 위법의 소지가 있습니다.

16. 휘파람으로 멜로디를 만들어 불면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17. 각종 논문, 소설, 기타 글에 가사를 한줄이라도 인용할 때는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8. 민주주의사회인 대한민국에서 타인의 글을 무단으로 수정하는 것은 저작권 위반입니다. 수정혹은 삭제하면 안됩니다.

19. 저작권법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만약 타인이 쓴 글이 저작권을 위반하였을 때,
수정 혹은 삭제하지 않으면 저작권 위반입니다.

20. 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팝송이나 교과서에 나오는 가요는 집에서 연습하면 안됩니다.

21. 실용음악학원은 불법입니다.

22. 대입 실기시험에서 아무 곡이나 연주하면 위법의 소지가 있습니다.

23. 새로운 법안은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과거의 위법도 위법입니다.

24. 개인홈피는 절대 아무도 오면 안되고 오직 내사진과 내글만 있어야되며 어떤 다른사진도 그어떤 인용의 글도 안됩니다.

25. 각종 블로그 업체의 스크랩기능은 당연히 불법입니다.

26. 홈랜으로 연결된 두 대의 개인 컴퓨터 사이에서 음원파일을 옮기는 것도 위법의 소지가 있습니다.

27. 각종 스포츠경기때 응원가 가려서 불러야만 합니다.

28. 중고등학교, 대학교, 기업체의 레크레이션 행사도 위법의 소지가 있습니다.

29. 동네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할 때 배경음악이 들린다면 귀를 막아야 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30. 핸드폰 컬러링은 불법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글이 더 이상 웃음거리가 아닌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 -_-;;

by BSang 2012. 3. 10. 16:59




1987년 새해는 혹독한 추위 속에 밝았다. 86년 한해 내내 이어진 수많은 투쟁의 여파로 민주화단체들은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런 결과로 건국대 사태 당시에는 학생들을 옹호하는 성명서 한 장 발표할 단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무인지경의 초토 위에서도 전두환 정권은 끊임없이 ‘ML당’ ‘반제동맹당’ 등 조직사건을 엮어냈다. 수사기관의 고문도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이 무렵 민주화 진영에서는 ‘이렇게 고문을 자행하다가는 저들이 필시 백일하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말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벌써 의문의 변사 사건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언론의 침묵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5공은 이미 고문 생지옥이었다.

그렇게 새해가 밝고 보름이 지났다. 1월15일자 중앙일보 사회면에 ‘경찰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평범한 2단짜리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기사의 파장은 컸다. 그날 밤 9시, 부검이 이뤄졌다. 그후 부검을 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 황적준은 물고문 도중 그 대학생이 질식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황적준은 ‘사인을 심장마비로 해달라’는 경찰의 협박을 뿌리치고 의사의 양심을 지켰다. 저들이 고문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어쨌거나, 이튿날인 16일 서둘러 화장된 대학생은 한줌 재가 돼 임진강의 찬바람에 날아가버렸다.

박종철.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광주사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당시 지지 시위로 구류 5일.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 시위 참여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언어학과 학생회장.

그는 1월13일 자정 무렵, 서울 신림동 하숙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 의해 세칭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된다. 아무런 합법적 절차도 없었던 불법 납치였다. 그는 각종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수배된 학교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댈 것을 추궁받는다. 실은 박종운이 두 차례 그의 하숙집을 다녀갔지만, 그는 모른다고 잡아뗀다. 구타와 폭행에도 불구하고 그가 끝내 입을 열지 않자, 수사관들은 익숙한 솜씨로 고문을 시작한다. 그의 사지를 수건으로 결박한 다음 물이 가득 찬 욕조에다 머리 처박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물고문은 10여시간 지속된다.

14일 오전 11시쯤, 수사관들은 그가 숨을 멈춘 것을 발견하고 당황한다. 그들은 박종철이 사망한 것을 확인한 뒤 후환을 차단하기 위해 곧바로 증거를 인멸하고 서울지검에 시신 화장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한다.

신문 보도로 여론이 들끓자, 경찰은 17일 마지 못해 자체 수사에 들어갔고 곧 진상이라며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이 박종철을 상대로 수사하던 중 책상을 ‘탁’ 치니 ‘억’ 하며 쓰러져 인근 중앙대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날 낮 12시쯤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유치하게 날조된 이 거짓말은 고문 의혹에 기름을 끼얹었다. 치안본부장 강민창의 발표문은 세간의 조롱거리로 회자됐다. 눈 뜨고는 차마 못볼 만행 앞에 그때까지 얌전히 정권의 나팔수 역을 하던 신문들이 의분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19일, 드디어 경찰은 물고문 사실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고문 경관 조한경과 강진규를 고문치사 혐의로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야당은 자체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정확한 사인 규명에 들어가고, 주력이 대부분 투옥된 상태의 민주화운동권은 종로5가 기독교회관과 명동성당에 다시 집결해 대책을 논의했다.

20일, 서울대생들은 추모제를 열었다. 인문대 총학생회가 중심이 돼 언어학과 사무실에 마련된 빈소에서 밤을 지새며 준비한 추모제였다.

“철아,/ 결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우리의 동지여/ 마침내 그 날/ 우리 모두 해방춤을 추게 될 그 날/ 척박한 이 땅 마른 줄기에서 피어나는/ 눈물뿐인 이 나라의 꽃이 되어라.”(추모시 중에서)

박종철의 학과 선배인 장지희는 눈물로 새긴 추모시를 직접 낭독했다. 장지희의 낭송시는 혹한의 날선 바람이 울부짖는 교정의 겨울 하늘로 흩어져 날아갔다. 그들은 학우의 영정을 가슴에 품고 교문 밖으로 진출했으나 이내 좌절당했다.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마주잡은 플래카드가 찢긴 채 펄럭였다.

민주화운동 세력은 총집결해 2월7일과 3월3일 각각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계획하고 국민적 공분을 조직할 기회를 노렸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준비한 집회였지만, 2·7국민추도대회와 3·3평화대행진은 이전 집회에 비해서는 그나마 대중들이 부쩍 더 관심을 보인 행사였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젊은이를 야만적인 고문으로 살해한 만행의 수준에 비춰보면, 두 집회의 위력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집회 현장을 힐끔거리며 주시하는 국민들은 아직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4월초, 민통련의 한 간부는 평소 친분이 있는 미 대사관의 재야담당 참사관 스티븐스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는다. 스티븐스는 그에게 2·7과 3·3 두 집회가 오히려 전두환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결과가 됐다고 말했다. 국민의 저항을 물리력으로 완전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으니, 전두환은 아마도 양보보다는 더욱 강공책으로 나갈 것 같다면서 몸조심하라는 충고도 곁들였다.

이 예상은 적중했다. 4월13일, 마침내 전두환은 일체의 개헌 논의를 금지하고 ‘체육관 선거’로 권력을 세습하겠다는 취지의 4·13 호헌조치를 내놓기에 이른다. 물을 끼얹은 듯한 적막 속에 한국노총·자유총연맹·전경련·문인협회 등 관변단체들이 이 ‘구국의 결단’을 환영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역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간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았던 교수·신부·목사·교사·법조인·의료인·연극인·농민 등 각계 각층이 전두환의 호헌 선언을 격렬히 비난하면서 성명을 쏟아냈다.

4·19기념일 아침, 매년 하던 대로 안병무·박영숙 부부의 수유리 집에는 묘소 참배를 마친 많은 재야인사들이 모여 늦은 식사를 하면서 4·13 호헌 선언에 따른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의논 결과에 따라 4월22일 기독교회관에서 함석헌·송건호·박형규·계훈제 등 원로인사 28명은 ‘폭력호헌 저지 민주개헌 관철을 위한 국민운동’을 제안하면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원로들이 농성을 시작한 기독교회관에서는 박종철의 영정이 그들을 지켜보았다. 어린 사슴처럼 순한 눈매에 가느다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명석해 보이는 22살의 청년. 원로들이 장기 농성에 돌입한 즈음 30, 40대 실무자들은 광범위한 범국민적 연대기구의 결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아리따운 청년 박종철이 역사를 바꾸어 놓는 거룩한 대장정을 예비하고 있음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교도관에 들은 사건진실···옥중 이부영 휴지에 메모-

고문 경관 2명이 구속됨으로써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던 박종철 사건은 넉달 뒤 더 큰 회오리를 몰고 왔다. 87년 5월18일 명동성당. 광주항쟁 7주년을 맞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미사가 끝날 즈음,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김승훈이 단상에서 한 장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제목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은 조작되었다’였다.

성명서의 내용은 가감 없는 사실이었다. 태풍이었다. 국민들은 넉달 전 박종철 고문치사 당시보다 더욱 경악하고 분노했다. 경찰이 고문살해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은커녕 어떻게든 파장을 약화시켜 보려고 고문 범죄의 진상을 조작하고 은폐하려 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검찰은 사제단이 밝힌 고문 가담자 황정웅·반금곤·이정호를 서둘러 구속했다. 뿐만 아니라 은폐조작 모의를 주도한 박처원 치안감 등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간부들을 연이어 구속했다.

어떻게 죽은 박종철은 말이 없는데, 고문수사 밀실에서 일어난 일을 사제단은 그와 같이 소상히 알게 됐을까? 후일 밝혀진 경과는 이러하다.

먼저 구속된 두 경관은 구치소에서 날마다 울었다. 뭔가 이상했다. 마침 두 경관의 옆방에는 인천사태 배후조종 혐의로 민통련 사무처장 이부영이 수감돼 있었다. 그에게 매우 ‘협조적인’ 교도관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날마다 상황을 전달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 고위급들이 날마다 찾아왔다. 회유하기 위한 면회였다. 이부영은 마침내 고위층의 치밀한 각본에 의해 사건이 은폐 조작됐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 내용을 화장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써 교도관을 통해 밖으로 내보냈다. 이 쪽지는 숱한 우여곡절 끝에 사제단의 손에 들어간다.

사진은 dcinside 에서, 글은 다음뉴스에서 퍼왔음

어제가 박종철 열사의 기일이었다고 한다. 18주년이라고 들은거 같은데..

87년의 난 국민학생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한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갈 때 즈음에 읽었던 '다시읽는 한국현대사' 라는 책을 통해서 자세한 얘기를 알 수 있었다.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더라 라는 내용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촉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라는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목소리를 낮추시면서 담임 선생님이 해주시던, 그때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시국 얘기들과 함께...

간혹 술자리에서 박사님들 세대를 이야기하면서 민주화 운동에 관한 언급들을 하시는것을 듣는다. 거의 10여년 정도 차이가 나는데 내가 겪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시는걸 들으면서 많이 바뀌었나 부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들어가서 해본 데모라곤 5.18 특별법 제정에 대한 데모가 전부다. 그 이후로는 해본 기억이 없다. 학생들의 사고가 바뀌어서 학생운동보다는 학교의 복지나 생활로 관심이 쏠려서 그럴꺼다 라고 생각한다.

다음 뉴스에 답글이 달린걸 보니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 시간이 가면서 잊어가는건 자연스러운 거라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말아야 할텐데.. 조금은 안타깝다.

by BSang 2012. 3. 10. 16:59



나같이 자취하는 사람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정보일듯..^^

by BSang 2012. 3. 10. 16:58

전날 술에 취한 여파로 생각보다 늦게 일어나서 부리나케 씻고,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섰다.

별로 춥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고 택시를 타러 가는데 엄청 쌀쌀하길래 금방 괜찮아지겠지 하는 맘으로 신탄진으로 향했다. 혹여 큰스님이 벌써 와 계실까봐..

도착해 보니 스님은 오시질 않았다고 해서 컴터를 키고 노는데, 옆에서 스님이 왜 그렇게 춥게 입고 다니냐고, 옷을 하나 주셨다. 스님은 항상 내 옷차림이 맘에 드시지 않아하신다. 나는 내 나이에 맞게 옷을 입고 다니는거 같은데 항상 애들처럼 입는다고, 옷들을 골라주시는데 내가 보기엔 너무 노티나구...딜레마..-_-;;

어쨌든 큰스님이 도착하시고 스님과 함께 예식장으로 향했다.

스님이 주례를 보시고, 결혼식이 시작됐다. 처음으로 앉아서 주례사를 들었다.

서로를 공경하고 믿고, 부지런하며 참으라는 스님의 주례사와, 내가 불러도 저것보다는 나을거 같은데 라고 생각이 드는 한 신랑측 사람의 노래(-_-;;), 친구가 담임으로 있는 반의 학생들의 합창, 사회자가 시키는 퍼포먼스 등으로 진행됐다.

기분이 묘하다.

그 동안 결혼한 사람들은 잘 알고 지낸 사람들도 있고, 친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것들과 느낌이 조금은 다르다.

대전에 와서 첨으로 알게된 동기였고, 중학교, 대학교 동창이기도 하며, 여러가지를 많이 챙겨주었던 상대이기도 하고, 다른사람들의 눈에는(적어도 스님들께는..^^) 서로 특별하게 보이기도 했던 친구..

이 친구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스님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친구는 분명 널 좋아한다고 그랬는데 왜 붙잡지 못했냐고 짖궃게 물어보시곤 했었는데..생각해보면 나도 좋아하기도 했던거 같은데 왜 못 붙잡았을까? ^^

친구가 결혼했으니 누나도 얼렁 결혼해야 할텐데...

한참 분주하게 움직이는 친구의 언니를 보면서 드는 생각..누나를 데려가는 사람은 정말 굉장한 사람일듯..ㅎㅎ

두 사람은 두 사람의 길을 떠났고, 뭐 언젠가는 내게도 좋은 사람이 생기겠지..^^

by BSang 2012. 3. 10. 16:57

교수님의 병문안을 다녀오다..

그 전날 교수님이 서울대학병원에 계시다는걸 알아서, 수연누나와 같이 가기로 했다.

8시 반에 학교에서 만나서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전날도 여러 얘길 했지만 올라가면서도 누나와 많은 얘기들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

병원에서 뵌 교수님은 예전보다 많이 야위신거 같았고, 좀 숨차 하시긴 했지만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1월 중에는 요양하실거라고 한다. 잠시 얼굴을 뵙고 나왔다.

병원에서 인사동으로 향해서 거기서 점심을 먹고, 인사동 거리를 구경하면서 생일인 사람들에게 줄 선물들을 구입했다... 동경만경에서 보고 너무 반가웠던 명신당필방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왔다갔다는 내용이 문에 붙어있었고, 예전에 기억했던 것보다 내부 공간이 넓어져 있었다. 스님이 인사동에 계실땐 몇번 들어갔었는데, 아시는 분이 보이질 않아 그냥 지나치며 보기만 했다.

예전에 왔을때와는 달라진 모습들과 부쩍 많이 보이는 외국인들과 일본어로 얘기하는 소리들...

그동안 많이 알려졌나보다.

날씨가 너무 추워졌다. 옷을 단단히 입고 다녀야할듯..

by BSang 2012. 3. 10. 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