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에 핸펀으로 받았던 문자..

이 날 당직을 서고, 숙소에 들어오는 길에 곧장 면사무소로 가서 전입신고를 했었다.

공인인증서를 가지고 있으면 인터넷으로도 된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해 보려고 하니 선택을 해야하는게 있고 잘 모르는거였고, 개인정보가 변경이 되지 않아서 그냥 면사무소를 가서 하기로..


다들 숙소로 진입신고를 했는데 그렇게 할꺼냐고 물어서 센터로 해달라고 했더니 해줬음..

나중에 다른 선생님들에게 주소정보를 줘야해서 적어줬는데 주소를 제대로 적어야 된다고해서, 전입신고를 센터로 했다고 두 번 얘길 하긴 했다.


그러고나서 숙소에 돌아와서 받았던 문자들..

서울로 전입신고를 했을 때는 이런 문자를 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만큼 전입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긴 하다.


아무튼 서울특별시 시민에서 고흥군 군민으로 바뀌었다.

서울시민이라는 것에 대해서 연연하지는 않으니 아쉽거나 그런건 없다.

서울을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by BSang 2015. 5. 31. 01:25








5월 초 어느날 찍은 사진들..

바다에서 생성된 안개가 육지쪽으로 불어와서 덮이는 모습을 봤음..

숙소를 나서면서 앞을 보니 하얗게 보이질 않아서 불이 나서 연기가 몰려온 것인가 생각했는데, 안개였다.

안개가 한쪽에서 생성되어어 육지쪽으로 와서 덮어가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음..

심지어 다리를 지나는데 안개가 다리를 통과하는 것도 봤으니..첫번째 사진이 그 장면..




5월 초 동아리 학생들을 지도하던 중 찍은 사진..

태양쪽을 공부해 보고 싶어하는 친구들이어서 태양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주제를 정하다가

불로 태양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고, 불꽃이 어떨까 생각하고 생각나는대로 적었었던 칠판..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겪었던 선생님들의 얘길 들어보니 그게 이상적이지만 꼭 그렇게 되지 않으니 어느정도는 이끌어줘야 한다고..




유성 봉명동 앞에서 찍은 사진..

유성 이팝나무 축제(행사이름이 유성 문화축제? 인가였던거 같은데 잘 모르겠음)에서 천막부스에 롯데리아가 있는 걸 보고 눈을 의심했음..

설마 굴지의 패스트푸드점이 천막에 있다는게 믿어지질 않아서..

근데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도 그렇고, 판매하는 것들을 봤더니 정말이었음..-_-;;


사람이 정말 많았었다. 

마치 신탄진에서 벚꽃축제를 안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유성에 몰려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까..

물론 파는 음식들은 비싸고 맛도 그닥..ㅠㅠ






소통의 날에 찍은 사진..

부서별로 사람들이 모였고, 고흥중심가에서 밥을 먹고, 강과장의 집으로 가서 담소를 나눴음..

이 날 비가 너무 많이 왔고, 호우주의보가 내려서 핸드폰으로 긴급재난문자가 왔었다.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중..




직원 중 한 분이 맛을 보라고 타 줬던 수제청..

백향과 라는 과일을 청으로 만든 거라고..

고흥 중심가에 파는 곳을 물어보고 직접 찾아가서 사 와서 한번 먹었는데,

숙소에 냉장고가 없는 관계로 곰팡이가 피어서 눈물을 머금고 버렸음..ㅠㅠ

첨 먹어보는 맛이고, 이것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던데..나중에 가서 선물용으로 사야지..







초파일 전에 가 봤던 선암사..

선암사 라고 해서 송창식의 노래에 나오는 선운사 와 헷갈렸는데, 선운사는 광주보다 위에 있는 절이었고,

이 곳은 순천에 있는 절..

가서 천천히 걸어보는게 어떨까 하고 갔던 곳인데, 이제까지 가 봤던 절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곳..

건물들이 조계종에서 유명한 절들처럼 크지도 않았고, 사람들 출입을 막는 출입금지 푯말도 없었다.

그리고 정말 손길이 많이 갔을 것 같은 연등들..

별 기대를 없이 갔던 곳이었지만 정말 인상에 남았고 또 가 보고 싶은 절이었음..

다녀온 후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까 태고종의 본산인 절..

들어가는 입구에 선교양종대본산 이라고 적혀있어서 그것도 찾아봤더니 조선시대 억불숭유 정책과 연관이 있는 이름이었음..

나중에 시간날때 다시 가봐야지.




쵸파로봇 5형제..

펀샵에서 보고 세 마리를 먼저 구매하고, 나머지 두마리는 그 당시에는 없길래 다른 인터넷쇼핑몰에서 구매..

현재 사무실 책상에 있는 컴터 위에 있음..

얘네 다섯마리가 하나로 합쳐져서 거대 쵸파 로봇이 되는데, 그것보다는 분리된 상태가 더 나은거 같아서 그냥 이렇게 놔두기로..

조립하면서 스티커를 엄청 많이 붙여서 그건 좀 그렇긴 하지만 뭐..ㅎㅎ






가장 최근에 있었던 바베큐 파티..

원장님의 사부님 덕분에 열렸었고, 많이 먹긴 했음..

전 직원들을 초대했었으나 쉬는 사람들, 근무하는 사람들 등등이 있어서 전부 참석하지는 못했음..



생각보다 핸펀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나보다..여러가지 일들도 있었구..

6월에도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by BSang 2015. 5. 31. 01:07









5월 1일, 잠시 짬이 났을 때 다녀온 곳..

녹동을 지나서 소록도를 통과해서 나오는 거금도..

거기서도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

첨에 네비가 안내해주는 길로 따라갔는데, 마을의 끄트머리쪽 밭쪽으로 안내를 하길래 따라가다가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이라서 포기..

주변은 온통 양파수확을 하는 분들 뿐..


핸펀으로 주소를 다시 찍고 운전을 해서 가니 주차장이 나왔다.

주차장에서 2.5킬로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 해서 주차를 하고 걸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사실 도로에 나무같은 것이 막혀있어 차가 지나가는게 힘들어 보였고, 그게 차가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인것도 있긴 했음..


아무튼 걸어올라가는데...너무 힘들었다 ㅠㅠ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해는 쨍쨍 내리쬐고..

사파리 모자를 쓰고 올라가는데 모자속으로 땀은 자꾸 나고..

등산제품을 파는 곳에서 사파리 모자의 머리부분에 구멍이 숭숭 난, 별로 이뻐보이지 않는 모자를 파는 이유를 그제서야 이해했음..ㅠㅠ


아무튼 도착한 암자는 정말 작았다.

송광암 이라고 적혀있는 건물 외에 오른쪽으로 높은 곳에 선방인지 대웅전인지 모를 건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개가 짖어서 가까이 가 보지 못하고, 약수만 마시고 내려왔음..


이 주변에서 가볼만한 절이 어디인지를 찾아보다가 가장 먼저 나오는 절은 능가사 였다.

큰스님 말씀으로는 송광사의 말사들이 이 쪽에 많이 있다고..

그런 검색어로 찾을 때 나오는 절이 이곳 송광암이었다.

거의 천년전에 만들어 진 절이라고..


그때는 지금처럼 도로로 이어지지 못했던 섬이었을텐데, 육지에서 이곳까지 들어와서 절을 만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새삼스러운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이야 다리로 연결이 되어있어서 차를 가지고도 들어올 수 있는 섬이지만 그때는 얼마나 힘들게 들어와서 이곳까지 절을 만들었을지..


송광암으로 올라가는 중에 나오던 송광전망대..

그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정말 멋있었다. 

핸펀으로 사진을 찍긴 했지만 직접 보는 만큼을 담아내지는 못하는 느낌이다.


약수터에 조약돌들이 쌓아져 있길래 이뻐서 찍어왔는데, 자세히 보니까 돌과 돌을 본드같은걸로 붙인거 같음..-_-;;


이제 어떻게 가는지를 알았으니 나중에 천천히 가서 둘러봐야지..




by BSang 2015. 5. 31. 00:26





이번 콘서트에서 들려줄 노래 중 두 곡이 공개가 됐다.

Ocean of Light, 소멸탈출..

콘서트가 기대가 되고 있음..+.+

by BSang 2015. 5. 17. 23:02

열시 가까이 되어서 일어나서 씻고, 열시반 정도에 사무실로 올라가서 분광기와 관련된 내용을 정리를 좀 해 봄..

점심을 먹고 민경선생님과 동아리 학생들을 지도하는 법에 대해서 대화를 나눔..

분광기 관련해서 조금 더 보다가, 온라인 교육 두 강좌를 듣고 내려옴..


내려와서 다큐를 좀 보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인디음악 켜놓고 들으면서 편한 자세로 놋북으로 글을 적으니까 편하긴하다.


같이 일하는 사람은 연구원에서 기계적으로 연구만 하는 삶보다는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이곳의 삶이 좋다고 한다.

아직 다른건 모르겠지만, 이 곳의 자연환경이라든가 주변환경에는 불만이 없다. 재미있기도 하고..

즐기면서 일하는 것이 될 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서울대에 있을대처럼 압박을 받는 생활은 아니라는건 확실하긴하다.

그 때는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받는 압박이 크긴 했었다.


일주일 사이에 오랫만에 숙 누나와 통화를 했었다. 조금전에도 했고..

자매들끼리 신탄에 내려오면서 사람들의 연락처를 물으려고 연락을 한 것 같은데, 난 이곳에 있으니 뭐..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모르겠지만, 가기 전까지는 상당히 가까웠었고, 자주 보고 했었던것 같은데..

아..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결혼을 했었구나..그래서 자연스레 볼 기회가 없어진거 같다.

그 때는 누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머리속에 이것저것 고민들이 많았었는데, 어떤 것들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급한 불을 끌 정도가 되어서 그런건지 몰라도, 조금은 익숙해진 느낌..

그렇다고 나태해지진 말아야겠지..


할 일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올림피아드와 관련된 일도 있고, 센터 내부에서 해야 되는 일들도 그렇고, 연구소와 같이 해야 할 일들도 그렇구..

어쨌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즐기면서 할 수 있으면 좋겠음..

by BSang 2015. 5. 17. 22:42

시간이 토요일이 넘어서 일요일로 넘어갔다. 벌써 일요일..

시간이 한시 반이 넘어가고 있음..


일어났다가, 잠들었다가 하면서 저녁시간을 놓쳐서 센터에서 저녁을 챙겨먹지도 못했음..

잔다고 잤는데 그래도 피곤..ㅠㅠ


지금은 약간 졸리는 정도..


저녁에 차를 마셨다. 예전에 스님들께 받은 차 중에 하나를 뜯어서 우려내서 마셨음..

여기와서 혼자 방에서 먹어본건 처음이긴 하다. 

자사호를 사용해서 혼자서 우려먹어본 것도 처음이기도 하구..

지난번에 광원 선생님과 마시면서 하나를 먹어봤는데, 신맛이 나는 제대로 된 차가 아니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걸 골라내기 위해 마신 것도 있다.


정말 휴일다운 휴일을 보낸 날인거 같긴 하다. 푹 쉬긴 했으니..


그동안은 휴일에는 무조건 서울 아니면 대전, 그리고 단양을 다녀왔었었다.

그래서그런지 차를 정말 많이 타게 됐다. 

서울을 여러번 차로 왕복을 해봐서 그런지 대전을 가는 건 이젠 그렇게 힘들지도 않은 느낌..


마음에 여유가 생기긴 한 걸까?

한 가지 문제에 있어서는 확실히 벗어난 건 맞는것 같다. 내가 갈 곳이 있을까?, 내가 할 일은 있을까? 라는 불안..

거기에 서울의 집과 관련된 문제가 해결이 되긴 했으니 큰 문제가 되던 것들이 해결이 된 건 맞긴 하다.

수연 누나 말대로 좋아보여도 그 안에 보면 복잡한 문제들은 있는게 맞는거 같긴 하다.

자기개발 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해야하고, 맡은 업무에 대해 평가를 어떻게 받을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고 등등..


3월 16일부로 발령을 받았으니, 이제 여기서 일한지가 2달이 조금 넘은 상태..

어색하고 불편한 옷 같았던 직급이 이제는 조금 익숙해지는것 같고, 조금씩 해야하는 일들이 늘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역시나 가장 아쉬운 건, 빅베어 갈 일이 없어졌다는 것..

교수님이나 학생들이 6월 초에 들어간다는거 같은데..ㅠㅠ


여기 숙소에 짐을 정리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건, 내가 부유하게 살았구나 라는 거였다.

서울에서 최대한 정리를 하고 가져온 것들인데, 그래도 짐이 너무나 많았다. 베란다에 선반을 설치해야 할 정도로..

자취생활을 오래 했던 것도 있고, 다른 사람들처럼 부모님 댁에 짐을 맡길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그런 것일수도 있다.

최소한 검소하게 사는 삶을 산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한 건 사실이다.

뭐 강제로 검소해졌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지금도 검소한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따지고 보면 정말로 꼭 필요한 것이 아닌 것들을 아직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일단 가지고 있는 책들 중 보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는 것들을 도서실에 기증을 하긴 했다. 


글을 쓰다보니 거의 두 시가 가까워지고 있음..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적다보니 시간이 벌써..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에 있게 된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할 뿐..

by BSang 2015. 5. 17. 01:56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아도 화상은 고구려에서 태어나셨다. 위나라 사신 아굴마를 아버지로 하고 고구려 여인 고도령을 어머니로 탄생하시어 아도라는 이름은 아버지 아굴마라는 아 자와 어머니 고도령 이라는 도 를 따서 아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도는 아버지 아굴마가 사신으로 고구려에 와서 머무르는 동안에 고도령을 만나서 아도를 낳게 되었다. 아버지는 위나라로 돌아가게 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어 함께 자라난 동네 친구들이 아버지 없는 아이라고 놀림으로써 아버지가 불현듯 보고싶어 16세 어린 나이에 아버님을 찾아 위나라로 가서 아버님인 아굴마를 만나뵈었으나 아버님은 위나라의 재상으로 단란한 가정을 가지고 계셨으므로 떳떳하게 아들로 행세할 수 없으므로 아버님의 권유에 의하여 위나라 서울 낙양에 자리잡은 백마사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백마사는 최초로 중국에 불법을 전한 축법난이 불사리와 불경을 백마등에 싣고 와서 절을 지었으므로 백마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도스님은 그곳 백마사에서 수도생활을 하는것보다는 고국 고구려로 돌아가서 떳떳하게 수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버님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말씀드렸더니 아버님 아굴마도 쾌히 승낙하시면서 백마사에 모셔진 사리를 고구려로 떠나는 아들 아도에게 분과하여 모시고 가게하였다. 고구려로 돌아온 아도는 어머님 고도령의 분부에 따라 불교가 전해지지 아니한 신라에 불법을 전하기 위하여 불사리를 모시고 신라땅으로 오시게 되었다. 신라 땅에 처음 오신 곳은 지금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동이다. 도개라는 이름도 위인이 와서 처음 도를 여신 곳이라고 하여 도개라 한다. 그곳에 와서 때를 기다리면서 모래장자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서 10년동안 목부 생활을 하다가 최초로 지은 절이 태조산 도리사이며 아도가 모시고 온 불사리 중 가장 큰 사리 일과를 그곳 도리사에 모시고 수행하던 중 어느날 포행 중에 뒷산을 넘어가니 산중턱 연못에 흰 연꽃이 피었는데, 그 연꽃에서 푸른빛이 방광하므로 산명을 푸른빛이 방광한 곳이라 하여 청화산이라고 명명하고 그 산에 절을 지어 흰 연꽃이 핀 곳이라 하여 백련사라 하였으며 아도스님께서 모시고 온 사리를 백면사에 전부 모시게 되었다.

그 후 백련사는 사세가 번창하여 이조말엽 고종황제 시절까지 내려오다가 비안 현감의 직권에 의하여 소실되게 되었다. 비안 현감은 대웅전 자리에 조상묘소를 쓰기 위해서 백련사를 소실시킨 것이다. 그 때 백련사 재산중 부동산은 비안현으로 귀속시키고 동산은 도리사와 청화산 법주사에 귀속하게 되었다. 그때 백련사 스님들은 백련산 정수암으로 이주하여 백련사 복원을 발원했으나 두점화상과 도암선사, 성암강백 삼대를 내려오면서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68년 무신년 2월 백련사를 복원하라는 위촉과 함께 묘허당 혜원스님께 전해주었던 불사리 중 00과를 00산 00사 스님께 분과하여 기증하게 된 것입니다.



세존 진신사리 연기문..

여기에 들어가는 00 절은 스님과 관련있는 절들..신흥선원, 원명사, 방곡사 등..

불광사도 그런지 잘 모르겠음..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부처님 사리를 불상 대신에 사리탑에 모시고, 바깥에 있는 탑에도 사리를 봉안했었다.

그래서 우리절들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상 대신에 사리탑이 대웅전에 모셔져 있음..세존진신사리 봉안도량 이라고 적혀있기도 하구..

프린트 된 종이가 있길래 버리기 전에 내용은 적어둬야할거 같아서 적어봄..

by BSang 2015. 5. 16. 19:57




2015년 4월 11일 저녁에 갔던 대청댐의 벚꽃들..

대청댐에 벛꽃길이 있다는건 이때 처음 알았음..그래서 차들이 그렇게 줄을 서는 거였음..

나무들이 커서 하늘을 덮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



내나로도 대교를 건너기 전에 "전망좋은 곳" 이라고 써 있어서 가 본 곳..

근데 막상 가서 보면 다 가리고 제대로 보이지 않음..-_-;;

아마도 거기서 찍은듯..



점심시간에 산책하다가 효동선생님께 얘길 듣고 가서 찍어온 사진..

그나마 주변의 전망이 잘 보이는곳..






점심시간에 해변에 내려갔다가 본 풍경과, 돌틈에 붙어있는 거북손, 그리고 서 있는 바위..





2015년 4월 17일에 찍은 낙지..

저녁을 먹고 여수의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부둣가를 거니는, 낙지 한마리가 수면과 가까운 물 속을 유유히 헤엄치길래

주변에 같이 있던 분이 근처 횟집에 가서 뜰채를 빌려와서 바로 잡아옴..

라면에 넣어먹겠다고 했는데 결국 먹지는 못했음..



방 정리하다가..(2015.4.20)

시디수납장을 인터넷을 통해 구매했는데, 배송불가지역이라고 하면서, 다른 택배는 배송비를 만원을 부른다길래

거기 업체를 통해서 보내달라고 부탁..

집에와서 개봉해보니 뒤쪽 벽 한쪽이 충격을 받아서 찢어져 있었음..ㅠㅠ

다시 보낼 순 없어서 그냥 쓰기로 하고 시디를 정리하기 시작..
정규 규격보다 큰 시디까지 여기에 넣으면 공간이 없어서 큰 음반들은 별도로 정리해서 다른곳에 넣음.

그러니까 공간이 조금 남긴 한다.

지금은 시디를 재생할 플레이어도 없어서 시디를 들으려면 예전에 사 둔 파나소닉 cdp를 쓰거나 컴퓨터를 사용해서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 일종의 장식용이 되어버린 시디들..

나중에 들을 수 있겠지..





점심먹고 산책하다가 찍은 사진들(4.22)






우주항공축제때 잠시 들러서..(2015.4.26)


by BSang 2015. 5. 8. 00:48

여우목 성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에 있는 천주교 성지이다. 여우목은 소백산맥의 준령인 대미산을 경계로 충북 단양과 접하는 곳에 있는 고개로 이곳에 천주교 신자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충청도 홍주 출신인 이윤일(요한)의 가족과 경상도 초대 신자인 서광수의 후손 치보가 이곳으로 피난오면서부터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윤일과 그 가족, 신자 30여 명이 체포되었으며 1867년 1월 21일에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되었다. 다른 지역으로 피난가 있던 서치보의 아들 인순과 익순도 병인박해 때 잡혀 순교하였다. 이윤일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성지 안에 서치보와 그의 아들 서인순의 묘가 있다. 성지 위쪽으로는 산비탈에 대여섯 집의 교우촌이 남아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지난 4월 25일에 방곡사를 가다가 들렀던 곳..

사실 국도를 타고 방곡사를 넘어갈때마다 봤던 곳이었지만 사유지 라고 해서 들어가는걸 포기하고 지나치기도 했었음.

지금은 도로가 바깥쪽으로 새로 나면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간 형태가 된 곳..


스님께 찾아뵙는다고 전화를 드리고 가다가 보이길래 들어섰다.

내 앞에 가던 몇 대의 차들이 같이 들어서길래 일행인줄 알았으나 나중에 알고보니 아니었음..

그분들이 차를 세우고 비포장 도로를 걸어가길래 난 차를 가지고 들어가려고 했으나, 도저히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차를 돌릴 공간이 있지도 않았고..그래서 후진을 해서 빼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올라가시는 분께서 뒤쪽으로 빼는걸 봐 주셔서 그나마 수월하게 뺐으나, 차 하부쪽에 자잘한 기스가 잔뜩..ㅠ


어쨌든 세워놓고 걸어서 들어가 봤다.






















둘러보던 중, 어느 성당에서 왔냐고 물으셔서 성당을 다니는건 아니고 지나가다 들렀다고 했음..

다 둘러보고 나니 한 분이 오셔서 얘길 나누게 되었고, 설명을 해주셨다.


묘지를 기준으로 뒤쪽에 둘러서서 동판에 예수님의 모습이 있길래, 

절 벽면에 보통 그러져있는 팔상성도 같은 것을 천주교에서도 쓰는구나 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분 설명으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부활하시는 장면을 열 네 장면으로 묘사해놓은 거라고..


전에 진영이한테 듣기로, 천주교 성지 라고 하는 곳들은 대부분 순교한 장소들이라는 얘길 들었었다.

그래서 유명한 성지들의 경우에는 잘 꾸미기도 하고, 역사가 꽤 되기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되기로 한다고 한다고..

여우목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어서, 아마도 그 곳 지역의 단체에서 지원을 할꺼라는 얘기도 들었다.

절 외의 천주교의 장소들도 문화재나 그런걸로 지정된다는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오신 분들은 다른 장소에서 온 분들이지만 지나가다가 여우목 성지를 보고서 들르신 거라고 하셨음..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이, 비록 종교를 믿지 않아서 사후에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정해질 때 이곳을 다녀온 것이 있기 때문에 그 복이 있을꺼라고..

복 이라는 단어를 천주교에서 쓴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잘은 모르겠으나 천주교는 불교만큼이나 유서가 깊고, 존중할만한 종교라고 생각이 든다.

by BSang 2015. 5. 7. 17:26

어제 드디어 서울 집 정리가 끝났다.


은행에서 주인아주머니를 뵙고, 현관열쇠와 방 열쇠, 계약서를 드리고 집에 올라와 있다가 핸드폰으로 계좌를 확인하니 입금된 것을 확인..

아주머니가 집으로 올라오셔서 같이 집을 둘러보고 나와서 인사드리고 헤어졌음..


3월 16일부터 집을 비우게 되면서 계속 걸리던 문제이긴 했다.

집을 비우고 있으니 월세를 내야되는지부터 시작해서, 언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내지 않았다는 수도세 등등..

집과 관련하여 주인 아주머니와 통화할때마다 신경이 곤두섰었고, 생각만 해도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정도였으니..

그렇게 있으면서 궁동에서 살 때 있던 주인아주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셨구나 라는 생각도 하고,

서울은 그런것보다는 돈에 더 관심이 많다는 생각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을의 입장에서 뭔가를 얘기하는게 힘들기도 했구..


시간이 날 때마다 차를 가지고 올라가서 짐을 싣고 날랐고, 그럴때마다 바뀌는 모습들을 봤다.

도배 장판에, 주차장 보수, 그리고 안방 유리창을 창에서 이중창으로 교체하는 등등..

4년 가까이 내가 살고 있을때는 전혀 그런것도 없고 신경도 안쓰시더니 내가 나가고 나서 그러는걸 보면서 정이 떨어지는것도 있었다. 정말 싹 다 비우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으니..


마지막까지 걸렸던건, 계약서였다. 부동산에 열쇠와 계약서를 맡기라고 하셔서

계약서는 왜 맡겨야 되는지 의아했었고, 혹시 몰라서 스캔을 해놓기도 했었다.

집 문제만 생각하면 머리속이 복잡해졌으니..


아무튼 잘 정리가 되었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내려왔다.


잘 모르는 사람과 돈이라는걸로 엮인 관계일때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기회였던것 같다.

궁동에 살 때는 전혀 느끼지도 못했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문제였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건물에 살지 않고, 서로 마주칠 일이 없어서 더 그랬던건지도 모른다.

부동산에 문의하는 사람이 4월부터 뚝 끊겨서, 아마도 8월 정도까지는 공실로 남겨둬야 할거 같다고 하셔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큰 짐을 덜었고, 더 이상 서울에 올라갈 이유가 없어졌다.

정말로 정리가 끝났다.

이제는 올라가더라도 대전을 가게 되겠지..

아님 올라가더라도 차를 가지고 올라갈 일은 극히 적을듯..


어제 궁동에 가서 주인집 아주머니를 뵈려고 했으나 건물에 사시지 않는것 같아 결국 뵙지 못하고 왔다.

진작 찾아뵐껄..ㅠ


by BSang 2015. 5. 5. 23:06